또 하나의 에피소드를 소개하면 필자가 2000년대 초반 영국에 근무할 당시 영국 외무성 직원과 면담을 한 기억이 떠오른다. 영어로 소통하는 과정에서 혹시라도 오해가 발생할 여지가 있을까봐 필자는 영어가 모국어가 아니라고 양해의 말을 전했더니 영국 외교관은 대뜸 자신도 영어가 모국어가 아니라고 하면서 필자를 안심시켰다. 놀라서 연유를 물어보니 자신은 스코틀랜드인이라서 영어가 모국어가 아니라고 설명했다. 한편으론 필자를 편하게 해주려는 생각이 있었겠지만 다른 한편으론 스코틀랜드인이라는 자부심을 느낄 수가 있었다.
영국의 역사를 보면 스코틀랜드와 영국의 중심 민족인 잉글랜드 간의 뿌리 깊은 애증을 이해할 수 있다. 약 2천400년 전 영국 본토에는 유럽에서 이주한 켈트족이 정착해 살고 있었다. 54년 로마제국의 영국 침공 이래 로마인의 지배하에 있던 영국은 4세기 게르만족의 대이동으로 인해 로마인이 떠난 후 410년 전후 이번에는 북쪽 게르만족인 색슨(Saxen)족과 앵글(Angle)족의 침략을 받게 된다.
영국 땅에 살고 있던 켈트족과 앵글로-색슨족 간의 치열한 전쟁이 이어지는데 이 전쟁에서 패한 켈트족은 영국의 서·북부로 내몰리게 된다. 이들이 스코틀랜드, 아일랜드, 웨일스를 건설하게 된다. 이후 13세기 말엽 스코틀랜드 왕이 후계자 없이 사망하자 왕위 승계문제를 두고 스코틀랜드와 잉글랜드 간 또 한 번의 전쟁이 벌어진다. 이 당시의 상황은 멜 깁슨이 주연한 ‘브레이브 하트’라는 영화를 통해 엿볼 수 있다. 자기가 살던 땅을 타민족에게 빼앗기고 이에 더해 1707년 잉글랜드에 합병을 당한 스코틀랜드인들의 마음속에는 잉글랜드에 대한 앙금이 존재하고 있다.
잉글랜드에 합병당한 지 310년 만에 스코틀랜드에서 다시 독립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스코틀랜드는 지난 2014년 9월의 독립 투표(그 당시는 찬성 44.7%, 반대 55.3%로 좌절)에 이어 2017년 3월28일 또다시 독립주민투표 법안을 스코틀랜드 의회에서 가결했다. 독립 투표를 위해서는 영국 중앙정부와 지난한 협의를 거쳐야 할 것으로 보인다. 영국으로서는 당면한 유럽연합(EU)과의 탈퇴협상이 힘든 과정을 겪을 것으로 예상되는 가운데 내부적으로 스코틀랜드의 독립 움직임이 반가울 리 없다. 영국 정부 대변인은 “메이 총리는 스코틀랜드 정부와 협상하지 않을 것이며 지금은 영국 전체를 위해 EU와 협상하는데 전념해야 한다”고 밝혔다.
스코틀랜드의 분리, 독립 주장이 유럽의 일부 국가들에 긴장감을 불러올 수 있다. 스페인의 경우 북쪽의 바스크 지역, 동쪽의 카탈루냐 지역의 분리, 독립이 골칫거리이다. 벨기에도 크게 화란어를 사용하는 플라망 지역과 프랑스어를 사용하는 왈롱 지역으로 나뉘어 있으며 플라망 지역이 독립을 희망하고 있다. 이들 국가로서는 스코틀랜드의 독립 움직임이 도미노 현상을 가져오지 않을까 내심 걱정이다. 스코틀랜드와 잉글랜드의 관계를 보면서 아프리카 속담이 떠오른다. “혼자 가면 빨리 가지만, 함께 가면 멀리 간다.”
김상일 道국제관계대사·前 주시카고 총영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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