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은 시대적 환경과 학자에 따라 다양하게 정의된다. 도덕적·인격적 면을 중시한 칸트, 문화와 지식면에 치중한 슈프랑거, 생명과 생활경험면에 중점을 둔 듀이, 개인주의 심리학적 입장에 입각한 루소나 케이, 사회적 세계관을 가진 페스탈로치, 신학적·종교적 견지에서 윌먼이나 마리탱 등 제각기 교육에 대하여 정의를 내리고 있지만 한가지 공통점은 ‘인간을 대상으로 한 인간형성의 과정’이라는 것이다.
교육은 끊임없는 사회 개조의 과정이고 경험을 사회적·실용적으로 넓히며 깊게 하는 것이다. 아이들은 교육을 통한 사회 개조와 경험에 의해 바람직한 인간형성의 과정을 거쳐 이 사회의 동량으로 성장한다. 미래의 버팀목들이 삶을 경험하고 삶의 과정을 밟으려면 어느 정도 학생 스스로 자발적 행동이 있어야 한다. 그러나 우리 교실에는 무기력함을 호소하는 수많은 학생들이 책상 위에 엎드려 있다. 밤에 충분히 자고 낮에는 몸을 움직여 이것저것 경험할 시기에 자신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쉬는 시간 없는 일상으로 아이들은 다양한 경험의 기회를 스스로 포기한다.
새로운 정부의 교육정책은 학생들에게 경험의 기쁨과 행복을 되돌려주는 것이 되었으면 한다. 제도권에 있는 학생들은 학교를 행복한 경험의 공간이라 인식할 수 있어야 한다. 제도권 밖 학생들에게도 다시 ‘교육’이라는 경험의 과정에 재진입하고자 하는 열망을 불러일으키는 교육정책이 필요하다.
문재인 대통령 교육정책의 주요내용으로 대학입시, 초중고교정책, 대학정책, 교육부 개혁 등이 제시되어 있다. 늦어도 두 달 안에는 가닥이 잡혀갈 듯 보인다. 하지만 여전히 어디에도 ‘패자(?) 부활’에 대한 배려가 보이지 않는다. 지금과 같은 ‘승자독식’의 사회 시스템이었다면 학창시절과 청년시절 잠깐의 잘못된 선택을 했던 그들이 지금 이 순간에 대통령 후보자나 장관 후보자가 될 수 있었을까?
교육은 끊임없는 경험 개조의 과정이라 하였다. 누구나 잘못된 판단과 실수를 한다. 죄는 미워하되 사람은 미워하지 말라고 했다. 질풍노도의 시기에서의 선택과 실패 역시 발전을 위한 경험이다. 한순간 우리 아이들의 잘못된 선택과 행동이라면 이를 감싸 안고 더 나은 삶에로의 교육 기회를 확대해야 하지 않을까. 또다시 사회의 역군으로 제대로 사는 삶을 살 수 있는, 사회 여러 시스템에서 구제될 수 있도록 하는 교육의 경험과정이 체계화되어야 할 것이다.
막심 고리키의 작품 ‘밑바닥에서’ 어느 배우의 “인간은 왜 사는가?”라는 질문에 “인간은 더 나은 삶을 물려주고자 산다”라는 순례자의 말이 가슴 한 켠에 ‘쓰림’으로 남는다. 대한민국의 교육정책이 제도권과 제도권 밖 학생들에게 다시 한 번 ‘인간’ 속에서 삶의 행복을 찾을 수 있도록 포용의 기회를 제공하여야 한다. ‘교육은 백년지대계’라는 말이 무색하지 않도록 끊임없는 재고로 정책을 수정하고 보완해 가기를 바란다.
서정미 안양대학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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