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송에서는 농장주가 강아지들에게 직접 주사를 놓고, 인공수정을 하고, 심지어 제왕절개 수술까지 하는 장면이 공개되어 큰 논란거리가 되었지만 더욱 충격적이었던 것은 수의사도 아닌 번식업자가 그렇게 주사를 놓고, 수술을 하더라도 불법이 아니라는 사실이었다.
수의사법에서 ‘수의사 이외에 다른 사람은 동물 진료를 할 수 없다’ 라고 규정해놓았으면서도, 자기가 사육하는 동물에 대한 진료행위는 허용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일명 ‘자가진료 허용 조항’으로 무면허 진료가 가능하도록 만들어 놓은 것이다.
자기가 키우는 동물이라면 동물의 종류에 상관없이 수술을 하든 주사를 놓든, 수의사가 할 수 있는 어떠한 종류의 진료행위를 하더라도 불법이 아니었던 것이다. 이에 동물보호단체와 수의사단체가 반려동물에서만이라도 자가진료를 금지해달라고 요청했고, 자가진료 금지 동물보호법 개정 및 수의사법 개정 요구에 무려 30만 명이 넘는 국민들이 동참하게 되었다.
결국 정부도 반려동물 자가진료 금지에 나섰고, 국회 공청회 등을 거쳐서 반려동물의 자가진료를 금지하는 수의사법 시행령 개정안이 지난해 12월 국무회의를 통과했다. 자가진료가 허용된 동물의 종류에서 개, 고양이 등 반려동물을 제외시키는 내용으로 개정안이 7월1일부터 시행됐다.
자가진료가 금지된다고 하니 “그럼 약도 못 먹이는 거야?”, “약도 못 발라주는 거야?”라고 궁금해 하는 분들이 생길 수 있다. 이 때문에 농식품부에서는 법 시행 이후 발생할 수 있는 혼란을 줄이고자 반려동물의 자가진료가 금지된 이후에도 보호자가 할 수 있는 자가처치 행위에 대한 가이드라인을 제작할 예정이다.
그런데 농식품부는 이 가이드라인에 약을 먹이는 행위, 약을 발라주는 행위 등 통상적인 처치 행위 이외에도 피하주사를 포함시키려고 하여 논란이 되고 있다. 자신의 반려동물에 대한 주인의 진료행위를 법으로 금지시키자고 해놓고 한편으로는 주사를 놔도 된다는 자가당착에 빠진 것이다.
식용목적으로 개를 기르는 육견 농장과 강아지공장(동물생산업, 동물번식장)에서는 현재 농장주가 직접 동물들에게 주사를 비롯한 온갖 무면허 진료행위를 하고 있다. 왜냐하면 그들에게는 시장으로 팔 ‘개고기’와 펫샵으로 판매할 ‘강아지’를 싸게 생산하는 것이 가장 중요한 문제이기 때문이다. 결국 농식품부가 이야기하는 ‘국민 편익’이라고 하는 것은 직접 온갖 주사행위를 하고 있는 육견협회 종사자들과 일부 번식업자들을 위한 것이 아닌가 하는 합리적인 의문이 생긴다.
농식품부는 반려동물에 대한 주인의 피하주사 행위를 허용한다면서 미국, 영국, 일본 등 해외사례를 들고 있다. 하지만 이미 약품 관리 체계 등이 완비되어있는 동물복지 선진국과의 비교는 그 자체로 의미가 없다.
미국, 영국, 일본에는 우리나라와 같은 대규모 개농장 자체가 없기 때문이다. 심지어 미국은 주별로 상황이 다르며, 일본은 모든 반려동물 백신이 처방대상으로 포함되어 있어서 수의사의 지도·처방 없이 무분별한 자가 백신 접종 자체가 불가능하다. 주사기를 소유하는 것만으로도 불법인 곳도 있다.
국민들의 동물보호복지에 대한 인식이 발전하면서 동물을 물건으로 취급하는 민법을 개정하고, 헌법에 동물의 권리(동물권)를 명시해달라는 목소리도 높아지고 있다. 동물보호 주무부처인 농식품부도 이러한 사회 인식에 맞는 정책을 펼쳐야 한다. 1천만 반려가족과 반려동물이 함께 행복할 때, 우리나라가 진정 위대하고 도덕적인 일류 국가로 거듭날 수 있다.
이성식 경기도수의사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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