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실 계층제 질서 안에서 공무원들은 일사불란하게 움직이는 조직이다. 효율성이 중요한 기능이다. 그러나 의회(議會)는 말 그대로 여러 사람이 모여 토론을 해야 하기 때문에 시끄러워야 한다. 성급하고 조급한 결정 대신에 조금은 더 여유를 가지고 미진한 부분을 검토하고 보완하는 기능을 가져야 한다. 관료조직이 표준화된 잣대를 가지고 일률적인 집행을 할 때, 의회는 예외적 상황에서 소외된 목소리를 한 번 더 들어주는 기능을 한다.
과거 한국 사회가 민주화가 되지 않았을 때는 정치 투쟁이 시민의 목소리를 대변했다. 권력에 대항하여 저항하는 기능이었다. 그러나 이제 민주화가 되어 의회가 제도화됨에 따라 정책 개발이 주된 기능으로 전환되고 있다. 1994년 행정정보 공개에 관한 법률이 제정되지 않았을 때에 청주시에서 행정정보 공개에 관한 조례를 먼저 제정했다.
당시 청주시와 중앙정부는 법령에 없는데 조례가 먼저 제정되었다고 위법 소송을 제기했지만, 대법원은 ‘정보 공개는 지방 자치의 정신에 부합한다’고 하여 합법 판정을 내렸다. 지방자치의 의미를 확인하여 주었고, 나아가 지방의회의 존재 가치를 보여 주는 사건이었다. 우리 사회에서 민주주의가 정착되어 가는 속도에 따라 행정에 대한 통제와 정책 개발이 중요시되어야 한다.
사실 민주주의의 원형에 따르면 의회가 결정하면 집행부는 집행하는 것이 원칙이다. 우리는 정부 주도형 국가 발전의 과정에서 행정이 비대하게 발전되어 있다. 최근 지방의회의 기능 활성화를 위해 의회의 정책 지원 조직 강화, 의원 보좌관제 도입 등이 논의되는 것이 그러한 맥락이다. 이에 최근 경기도 의회가 대만, 일본, 미국의 지방의회 기능을 비교 분석하는 국제 세미나를 개최하는 것은 의미가 있다.
우리와 역사적 맥락과 정치적 상황은 다르지만, 민주주의 시행착오를 경험한 나라의 사례를 통해 우리의 사회과학적 상상력을 제고할 수 있다. 사실 우리나라에서 지방자치는 1980년대는 군사독재 권력에 맞서 정치권력을 바꿀 수 있는 수단으로 주장되었다.
그리고 1990년대는 민주주의의 이념을 실현하기 위해 주장되었다. 2000년대는 자생적 지역 개발을 추진하는 동력으로 주장되고 있다. 특히 노무현 정부에서는 분권과 혁신을 통해 국가 권력 구도를 바꾸는 계기를 마련하기도 했다. 이제는 지방자치가 생활민주주의를 실천하고 시민에게 권력을 돌려주는 매개체로서 기능하기 위한 역할을 모색할 시기이다.
이에 의회 운영에서 가장 경계해야 할 부분은 다수의 횡포(majority tyranny)에 대한 유혹을 극복하는 것이다. 선거를 통해 다수가 확보되면 무엇이든 숫자로 밀어붙일 수 있다는 오만이 자멸을 초래한다. 민주주의는 끊임없는 대화를 통해 상황의 변화에 민감하게 대응해야 한다. ‘환경 변화가 도전을 유발한다(Climate Change Challenge)’는 것은 의미 있는 메시지이다.
최근 한국행정학회 학술대회에 참여한 재니스 라챈스(Janice Lachnace) 미국 행정학회 회장이 “효율성이나 성과보다 ‘법에 의한 지배’ 원칙의 확립이 중요한 시대이다”라고 인사말을 한 것은 미국이나 한국이나 의미하는 바가 크다. 지방의회는 민주주의 가치를 실현하기 위해 우리 모두가 소중하게 가꾸어 가야 할 우리의 자산이다.
이원희 한경대학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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