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50여년 만에 만나 나라 걱정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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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주 토요일 근 50여년 만에 한동네서 태어나 같은 초등학교를 다녔던 남녀친구 6명을 만났다. 당시 2년 터울로 4~6명을 낳던 시절이고 보니 동생들도 대부분 친구들이었다. 집안 구석구석 알고 지내던 우리는 부모님으로부터 출발해 안부를 묻는데 한 시간은 족히 걸렸다. 못 만나고 지낸 지난 50여년 동안 살아온 삶은 모두 다르고 지금 모습도 알아보기 어려울 정도로 변했지만 그 시절 이야기는 끝이 없었다. 

한국 전쟁이 끝난 폐허에서 출생한 우리는 참 어려운 시절을 보냈다. 대부분 친구들은 가방이 없어 교과서를 보자기에 둘둘 말아 메고 다녔고, 신발이 없어 맨발로 다니는 친구들도 많았다. 개중에는 타이어 같은 검은 고무창에 끈을 얼기설기 엮어 만든 신발을 신는 친구들도 있었다. 끼니를 굶는 아이들도 있어 학교에서는 커다란 무쇠솥에 끓인 노란 강냉이죽을 양은 도시락에 나누어 주곤 했다. 

그런 시절을 지난 우리는 지금 어떤 삶을 살고 있나? 조금 더 배웠든 아니든 제 몫을 하며 살고 있는 것으로 보였다. 여자 친구들은 25~29살 사이에 결혼을 했고, 남자친구들은 20대 후반에서 30대 초반에 결혼을 하여 평균 2명의 자녀를 두었다고 했다. 부모 안부에서 시작해 자식 안부로 넘어가니 조금씩 한숨이 나오기 시작했다.

결혼을 아직 못한 자녀를 둔 친구도 있고 직장을 못 구해 걱정하는 친구도 있었다. 동네 지인 안부를 주고받으면서 조금 놀라운 사실은 고향땅을 지킨 사람들의 부 축적에 관한 이야기였다. 자식 공부시키겠다고 도시로 나간 부모 밑에 자란 친구들은 겨우 아파트 한 채 지니고 있었지만, 고향을 지킨 친구들의 재산은 입을 다물 수 없을 정도였다. 

산업화와 고도 경제 성장기를 거치면서 지가 상승이 가져온 결과이지만 덜 가진 것에 대한 씁쓸함을 넘어 집 한 칸 장만하기 위해서는 급여를 받아 한 푼 안 쓰고 모아도 12년이 지나야 가능하다는 언론보도는 일그러진 채 성장해 온 한국사회의 모습을 적나라하게 보여준 것 같다. 초기 베이비부머 세대인 우리는 그래도 행운아다. 

고등학교를 졸업해도 대기업 취직은 물론 이사까지 무난히 올라갈 수 있었고, 대학을 졸업하면 골라서 취업을 할 수 있었고 능력 여부와 상관없이 정년을 보장받았다. 상위학교 진학은 안 했어도 고향을 지킨 친구들에게는 지금 돌아보니 지켜온 토지가 충분히 부를 보장했다.

 

지금 20~30대는 만나서 이야기를 해보면 너무 현명하고 똑똑하다. 멋진 스펙을 지녔고 열정도 뛰어 나다. 뭐든 할 수 있는 자신감도 있어 보이지만 지금 이 사회는 이들이 열정을 펼칠 장이 없다. 오죽하면 이 세대를 연애, 결혼, 출산, 인간관계, 내 집, 희망, 꿈을 포기한 7포 세대라고 하겠나. 20년 전 일본의 저성장기에도 우리와 유사한 상황을 겪고 나름 극복한 후 오늘에 와 있다. 

당시 일본 젊은이들에게도 ‘캥거루족’ 등 다양한 이름을 붙여 사회구조적 문제를 개인에게 책임지우는 모습을 보였다. 가장 두드러지게 나타난 현상은 혼인율과 출산율 하락이다. 그리고 소위 늙은 부모에게 의지해서 생존하는 NEET(No education, employment)족이 늘어나는 현상이었다. 이들이 약 100만명 정도였다고 한다. 경기가 회복단계인 지금, 일본이 겪는 노동력 부족 문제는 이들 100만명이 노동시장에 참여하지 않음으로 생긴 문제로 진단한다.

최근 일본 노동 정책에는 그동안 방치한 이 100만명을 일자리로 끌어 내기 위한 전략이 포함되어 있다. 저성장, 저금리, 저투자, 저물가 등 신저성장사회로 들어서는 한국 사회도 마찬가지이다. 어느 정도 지내다보면 무기력은 학습된다. 거기까지 가기 전 특단의 대책이 필요하다. 

다행히 문재인정부가 문제의 심각성을 알고 일찌감치 일자리만들기와 비정규직 문제 해결에 적극 나서는 행보에는 박수를 보낼 만하다. 그러나 당장 해결책처럼 보이는 무기 계약직 전환 등 한 직장 안에서의 이중트랙의 인사정책은 20년 뒤 지금 비정규직 문제처럼 똑같은 노동 문제를 유발할 수밖에 없다. 좀 더 적극적인 특단의 정책이 요구된다.

 

우리는 저녁 식사 후 밤 10시까지 커피 한 잔씩 들고 초 여름밤 기운을 느끼며 안부에서 자랑으로, 그리고 개인의 고민과 걱정을 넘어 또다시 나라 걱정으로 만남의 끝을 맺었다. 나는 ‘희망’이라는 말로, 친구들은 ‘기대’라는 마음으로 진짜 이 정부가 잘 되었으면 했다. 우리 모두를 위해.

 

한옥자  경기도가족여성연구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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