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안산국제거리극축제가 이런 축제 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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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수부로 분한 배우가 대형 크레인에 매달려 공중을 유영한다. 어둠 속에 홀로 외로이 세월호 참사 미수습자를 찾는 몸짓에 시민 관객 모두는 숨죽이며 집중했다. 차분한 침묵은 각자 마음 속 상처에 대한 위로, 미수습자가 돌아오기를 바라는 희망을 대변했다. 

미수습자가 떠오르는 퍼포먼스가 이어지는 순간 환호와 탄식이 교차했다. 많은 이들은 눈물을 훔쳤다. 5월 열린 안산국제거리극축제의 개막작 풍경. 축제는 이처럼 시민 관객의 가슴에 밀도 높은 서사를 남기며 지나갔다.

 

올해가 벌써 열세 번째. 막 문을 연 안산문화예술의전당 광장마당에서 버스킹 형태의 공연을 중심으로 2005년 시작했던 안산국제거리극축제는 이제 안산을 대표하는 문화예술축제가 됐다. 십수 년 동안 축제가 지향하는 가치와 소신대로 작품을 찾아 나서기도 하고, 공모와 제작 지원을 하는 등 줄기차게 노력해왔다는 자부심도 있다. 

그러나 이것에 만족하지는 않는다. 안산국제거리극축제가 도시에서 펼쳐지는 거리예술축제의 전범(典範)이 됐으면 하는 기대가 있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축제는 과거 13년의 기록, 업적, 결과를 돌아보고, 앞으로 나아가야 할 방향과 실천 과제를 차분히 점검해야 하는 중요한 시점에 놓여 있다.

 

해답은 언제나 기본에서 찾는 것보다 나은 것이 없다고 했다. 안산국제거리극축제가 한 걸음 더 나아가기 위한 과제도 거리예술축제의 기본 구조에서 찾을 수 있을 것이다. 거리예술축제는 도시의 거리, 광장에서 연극·퍼포먼스·무용·음악·다원예술 등의 개별적인 거리극이 서로 관계를 맺으며 벌어지는 구조를 가진다. 

이러한 관계 맺음이 전제되지 않는다면, 거리예술이 거리극축제라는 거대한 공간 안에서 공명(共鳴)하는 것이 아니라 개별적인 거리극의 각개전투에 그칠지도 모른다. 물론 다양한 내용, 장르와 형식의 거리극을 한 곳에서 즐길 수 있다는 특장점을 간과해서는 안 되지만 말이다.

 

추억이 되는 장면들을 들여다보면, 분절적으로 파편화된 사실이 아니라 사실의 조합이 이루어내는 서사구조, 즉 내러티브가 공감을 일으킨 것이라는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축제도 마찬가지다. 드넓은 광장에서 개별 거리극들이 만나고 부딪히고 갈등하면서 궁극적으로 하나의 거대한 서사구조를 만들어내는 ‘시간ㆍ공간연출 개념’이 중요한 이유가 여기 있다. 

시간의 흐름과 바람의 흐름, 소리의 흐름 등이 축제 공간에서 입체적으로 고려되고, 불규칙적이고 무차별하게 움직이는 관객들의 흐름과 공명, 감정이입 자체가 축제의 장에서 중요한 요소가 되는 등의 진행연출이 정교하게 이뤄져야 한다. 이로써 개별 거리극에서 느끼는 다양한 감정들이 서로 만나고 소통되어 마침내 광장에서 솟구칠 수 있도록 하는 세심한 접근이 필요하다.

 

안산국제거리극축제는 여러 어려움 속에도 나름 잘해왔지만, 앞으로 축제가 좀 더 고도화되기 위해서는 가지수 많은 개별 프로그램들이 흩어져 있기보다는 이들이 관계 속에서 입체적으로 자리하는 방편이 마련돼야 한다. 

이러한 변화모색은 거리예술축제의 기준이 되기 위한 길라잡이가 돼 줄 것이다. 안산은 이를 구체화 할 수 있는 자산도 이미 보유하고 있다. 서울 광화문광장 면적의 2.6배에 달하는 안산문화광장이 있기 때문이다. 안산이 ‘국제거리극축제’라는 이름에 값 할 수 있는 발판은 우수한 ‘장소성’에서 찾을 수 있다고 본다.

 

올해 축제가 역대 최대 규모, 소재와 형식의 한계를 뛰어넘은 새로운 시도, 시민과의 협업 등으로 중요한 한 걸음을 내디딘 것은 분명하다. 이처럼 축제가 장르의 구분이 모호해지고 새로움의 기준이 급변하는 작금의 국내 거리예술을 선도하고 있다면, 이제 개별적인 요소들에 대한 환호를 넘어 서사가 충만한 축제 공간으로 만들어내는 것이 필요하다.

이로써 거리예술축제의 기준이 돼 새로운 역사를 쓰는 축제. 전국에서 모여든 시민 관객 각자의 가슴 속에 크고 작은 서사를 남기는 축제. 세계 각지 거리예술가들이 애정을 드러내며 너나 할 것 없이 모여드는 곳. 안산국제거리극축제가 이러한 축제 되기를 바란다.

 

강창일 안산문화재단 대표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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