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가벼운 마음으로 TV에서 범죄추리 다큐멘터리를 시청했다가 혼란을 경험했다. 다큐의 내용은 간단했다. 작은 섬에서 살인으로 추정되는 사망사고가 발생했고, 현재 수사가 진행 중이며, A씨가 유력 용의자로 의심된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시청한 다음날 타 언론에서도 주민들을 살인용의자로 보는 많은 추측 보도가 쏟아져 나왔다.
해당 사건은 현재 타살 여부 자체가 검토 중이었다. 프로그램에서 유력한 용의자라고 밝힌 이웃 A씨에 대해 수사기관은 범죄혐의를 입증한 바 없다. 그러나 언론은 이미 이를 ‘살인사건’으로 거의 규정했다.
범행동기도, CCTV나 지문 등과 같은 직접 증거도 확인된 바 없으나 몇 가지 정황 증거로 ‘이웃 A씨’를 범인으로 지목하다시피 했다. 일부 언론은 실명까지 공개했다.
그런데 만약, ‘A씨’가 범인이 아니라면 우리 사회는 어떤 책임을 질 수 있는 것인가? ‘A씨’가 실제 범인이라면, 아무 문제가 없는 것인가?
인류는 유사이래 많은 실수를 해 왔다.
한국에서는 ‘약촌 오거리 사건’, ‘삼례 3인조 사건’ 등 무고한 시민이 10년이 넘는 세월 동안 옥살이를 했던 사례가 있다.
‘채선당 임산부 사건’은 어떤가? 온 국민이 해당 기업을 비난했고, 사실관계를 파악하기도 전에 기업은 사과문을 발표해야 했지만 CCTV 하나로 모든 상황은 반전되었다. 그런데 비난했던 사람들은 흔적없이 자취를 감췄다.
반인륜범죄나 흉악범죄일수록 피해는 더욱 커진다.
대표적으로 2012년 ‘나주 초등생 성폭행 사건’의 피의자 얼굴이 모 신문 1면에 공개됐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그 사진은 해당 사건과 관련 없는 무고한 시민의 얼굴이었다.
그는 하루아침에 초등생 성폭행범이 되어 자신의 얼굴이 전국에 알려졌다. 그리고 그는 ‘죽고 싶다’는 말을 SNS에 남겼다.
실제, 법무부에 따르면 구금 또는 형 집행 후 무죄 판결이 나와 2012~2016년 정부가 지급한 보상금은 2천837억, 건수로는 13만여 건에 달한다.
그 죄없는 가해자가 당신이 될 가능성은 없는가?
이러한 경험들로부터 인류는 ‘100명의 범인을 놓쳐도, 1명의 무고한 범인을 만들어서는 안 된다’고 합의했고, UN 세계인권선언 및 각 국의 헌법은 ‘무죄추정의 원칙’을 재판 및 수사 원칙으로 천명했다.
미국 연방대법원은 18세 소녀를 납치해 강간한 범죄자, 미란다(Miranda)에게도 피의자로서의 권리가 제대로 보장되지 못했다는 이유로 무죄를 선고했다.
물론, 이에 대한 비판도 만만치 않다. 가해자의 인권이 피해자의 인권보다 중요하냐는 물음이 이어진다. 강력사건의 피해자와 그 가족의 고통을 생각했을 때 이런 논의는 더욱 조심스럽다.
국민들은 언제든 범죄자를 혹독하게 비난할 준비가 되어 있다. 그래서 범죄피의자 인권의 문제는 더욱 어렵고, 민감하다. 하지만 단 한번의 실수나 착오로 나와 내 가족 중 누군가가 범죄피의자가 될 수도 있다. 이런 생각을 하면 마녀사냥식 발언, SNS, 수사, 언론보도 모두 자제해야할 것이다.
박승자 경기도인권위원·교정보호학 박사
로그인 후 이용해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