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시론] 누가 제왕적 대통령을 만드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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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3월10일 대한민국 헌정 사상 최초로 현직 대통령이 탄핵을 당해 권력에서 물러나는 사태가 발생했다. 비선실세의 국정농단 사건으로 촉발된 탄핵 정국은 몇 개월 동안 대한민국을 혼란과 갈등의 소용돌이 속으로 몰아넣었다. 헌재의 결정으로 탄핵 정국은 일단락되었지만, 관련자들은 계속 사법적 절차를 밟고 있다.

 

헌법재판소는 탄핵인용 결정을 내리면서 이례적으로 대통령제의 폐해를 역설하며 개헌의 필요성을 피력했다. 헌재는 그동안 우리 헌법이 채택한 대통령제는 대통령에게 정치권력을 집중시켰음에도 그 권력에 대한 견제 장치가 미흡한 제왕적 대통령제라고 평가했다. 게다가 이러한 현행 헌법의 권력구조는 대통령의 리더십 문제와 결합해 비선조직의 국정개입, 대통령의 권한남용, 재벌기업과의 정경유착과 같은 정치적 폐습을 가능하게 했다며 탄핵 이후 대한민국을 위해 권력구조 개혁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그러나 조기 대선 정국을 거치면서 유력주자를 비롯한 후보들의 공약과 캠프의 활동 양상을 보면 우리나라를 뒤흔든 탄핵을 초래한 제왕적 대통령제에 대한 폐해를 망각하고 있는 듯하다. 작년부터 여론조사 1위를 달리고 있는 유력주자는 경선 캠프 때부터 유력 인사들이 합류하여 막강한 힘을 발휘하며 같은 당 경선 후보자들은 ‘정당 결정을 뛰어넘는 힘을 가졌으며, 제왕적 대통령제의 등장’을 가져올 수 있다며 우려를 표명했다.

 

유력주자의 씽크탱크 출범식에는 500명 이상의 교수들이 몰렸다. 정부부처 공무원들은 유력주자의 ‘문고리’에 줄 대기 위한 물밑 경쟁이 치열하다고 한다. 이처럼 유력주자 캠프에는 학자, 관가 인사 및 지지자들의 발길이 문전성시를 이룬다. 물론 이중 순수하게 후보를 지지하고 봉사활동을 하는 사람들도 있겠지만, 자신이 지지하는 후보가 대통령이 되면 논공행상(論功行賞)을 기대하는 사람도 적지 않을 것이다. 

더구나 이번 대선은 조기 대선으로 대선정국이 상대적으로 짧은데다가 과거에는 67일 동안의 인수위원회를 거쳤지만 보궐선거로 치러지는 선거인만큼 당선자는 인수위 없이 당선증을 받는 순간 바로 임기를 시작한다. 이에 대선 공신들은 짧은 기간에 투자하여 바로 보상을 받을 수 있는 호기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벌써부터 공신들로 구성된 섀도우 캐비넷 명단이 돌고 있다고 한다.

 

이렇듯 우리 모두 부지불식간에 후보시절부터 제왕적 대통령을 만들어 가고 있는지 모른다. 불과 한 달 전까지만 해도 우리나라 역대 대통령 거의 대부분이 임기 중 또는 퇴임 후 불운한 말로를 걷는 것을 보고 대통령제는 용도폐기 돼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그리고 개헌 논의가 불붙었지만 유력주자의 반대로 대선전 개헌은 물 건너갔다.

 

또한 현재 대통령 후보들은 말로는 대통령의 권한을 줄이겠다고 주장하지만 공약의 면면을 살펴보면 행정권을 강화시키는 것이 다수다. 대통령은 여전히 3만여 개의 자리를 바꿀 수 있으며, 이 중 몇 천 명에 대해서는 ‘기사 딸린 차(장차관급)’를 태워줄 수 있다고 한다. 대통령 제도가 문제냐 아니면 그 제도를 운용하는 사람이 문제냐 하는 것은 어쩌면 ‘닭이 먼저냐 달걀이 먼저냐’와 같은 비유일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제도를 만들고 운용하는 것은 사람이다. 새로운 대통령의 탄생을 앞두고 또 다시 불운한 역사를 되풀이 하지 않기 위해 정치인을 포함한 국민 모두가 제도를 잘 운영할 수 있도록 감시와 견제를 소홀히 해서는 안된다.

 

이옥남 바른사회시민회의 정치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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