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거철만 되면 한 때 여당의 핵심이었던 국회의원이 어느 날 야당으로 가고, 반대로 야당의 최고위원이 여당에 입당하고, 여당의 정책 브레인이었던 사람이 야당의 선거를 이끄는 모습을 보게 된다. 이를 보면서 도대체 ‘명분이란 무엇이며 지조란 무엇인가’라는 의문을 갖게 한다.
명분(名分)이란 이름과 직분에 걸맞게 지켜야 할 도리이다. 이는 명의(名義)와 신분에 따라 마땅히 지켜야 하는 것으로 부자(父子), 군신(君臣), 부부간에 서로 지켜야 할 도덕이다.
명분은 늘 그럴싸하게 포장된다. 사람들은 대개 객관적인 명분을 만들어 자신의 행위를 합리화한다. 그러나 명분은 객관적인 명분이 아닐 경우가 많다. 자신의 상황에 따라 만들어져 객관화로 포장될 뿐이다. 역사에서 역성혁명의 왕조 창업이 그러했고, 반정의 명분 또한 그랬다. 변절자의 명분도 늘 그럴듯하게 포장되어 객관화되었을 뿐이다.
조지훈은 지조를 ‘순일(純一)한 정신을 지키기 위한 불타는 신념, 눈물겨운 정성, 냉철한 확집(確執), 고귀한 투쟁’이라고 하였다. 우리 역사에는 대의와 명분 때문에 목숨까지 버리는 절의(節義)지사가 많았다. 그들에겐 목숨과도 바꿀 수 없는 지조(志操)가 있었다. 오늘날엔 그런 지사의 의연함을 보기가 쉽지 않다. 지조는 원칙과 신념을 지키는 꿋꿋한 의지나 기개이다.
오늘날엔 옛 선조들의 명분과 지조의 선비정신을 찾아보기 쉽지 않다. 어떤 연유로 그렇게 되었을까? 그 이유를 일제 식민지 시대의 친일파 문제를 제대로 청산하지 못한 결과에서 찾는 견해가 있다. 친일파를 제대로 처단하지 못함으로 인해 정(正)·사(邪), 충(忠)·역(逆)의 가치관이 뒤섞여 버렸고, 사필귀정이라는 말이 무색하게 되어버렸다.
올바르게 살아서 고통스러운 것보다는 시류에 아부하면서 편하게 사는 것이 복된 삶이라는 왜곡된 인생관이 확산되었고, 그 결과 의리와 지조를 높이 숭상하던 우리 사회가 이해관계를 중시하고, 아부와 굴종, 변신을 미덕인 것처럼 여기는 사회로 변하고 말았다는 것이다.
정치 지도자의 지조는 국민들에게 미치는 영향이 지대하다. 정치 지도자라면 마땅히 지조를 갖추고 국민의 눈을 의식하고 국민을 위한 정치를 해야 한다. 자신의 이익을 위해 그를 따랐던 동지들과 지지자들을 하루아침에 함정에 빠뜨리지 말아야 한다.
지조가 없는 지도자는 믿을 수가 없다. 정치 지도자의 지조 없는 변절은 국민들을 실망스럽게 한다. 백이(伯夷)·숙제(叔齊)나 사육신의 지조는 아니더라도 소신과 지조를 굽히지 않는 존경스런 지도자를 보고 싶다.
지조는 정치 지도자에겐 목숨과도 같은 것이어야 한다. 거짓말 하지 않는 지도자, 명분과 지조가 있는 지도자, 소신과 원칙을 지키는 반듯한 지도자가 필요하다. 국민들은 이번 선거에서 그런 지도자를 뽑는 소중한 권리를 행사해야 한다.
김유성 죽전高 교장·용인시 교원총연합회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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