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시론] 용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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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난히 천성이 활달한 어느 사형수 D의 고백이다. 어느 날 오랜만에 그의 옛 친구가 구치소로 면회를 왔다. 그는 10여 년 전 살인을 하고 도피하던 D에게 은닉처를 제공해 줬고 그 혐의로 옥살이를 했던 친구이다. 그는 출소 후에도 사업의 실패와 가정의 파탄으로 인해 고달픈 삶을 살아왔다. 

친구는 D를 원망하면서도 사형수로서 D가 겪을 고통을 생각하며 참고 살았다고 한다. 그러나 막상 구치소에서 D의 여전히 밝고 건강한 모습을 보고는 “내가 밖에서 고초를 겪는 동안에도 너는 이렇게 편한 얼굴로 잘 살고 있었구나!” 하며 말없이 돌아갔다. D는 죄책감으로 몰골이 쇠약해진 D의 모습을 상상했던 친구가 느꼈을 미묘한 상실감을 이해했지만, 그 상황에서 진정으로 그 친구에게 아무것도 해줄 수 없었다고 한다.

 

이창동 감독의 ‘밀양’ 이라는 영화는 용서의 어려움을 잘 보여주는 화제작이다. 주인공 신애는 남편을 잃자 어린 아들과 밀양에 정착한다. 그러던 어느 날 아들이 동네학원 원장에게 유괴되어 살해된다. 아들의 죽음을 접한 신애는 극심한 트라우마를 겪는다. 이를 극복하는 과정에서 그녀는 신앙을 갖게 되고, 마침내 가해자를 용서함으로써 새로운 삶을 찾기로 결심한다.

그러나 정작 교도소에 복역 중인 가해자를 만났을 때, 무릎 꿇고 용서를 구하는 가해자가 아닌, 이미 신앙 속에서 구원을 받아 평화롭다는 가해자를 보게 된다. 그는 자신은 하나님으로부터 이미 용서를 받았으며 신애도 하나님을 알게 되어 기쁘다고 한다. “당사자인 내가 아직 고통을 받고 있는 데 누구에게서 무엇을 어떻게 용서받았다는 것인가?” 어렵게 택한 용서할 기회마저 빼앗겼다고 느낀 신애는 상실감으로 고통의 생활 끝에 마침내 자살한다.

 

용서는 가해자가 죄를 인정하고 사죄를 구하는 과정에서 이뤄지는 것을 틀로 한다. 이 경우 피해자는 가해자를 용서하고자 했지만, 가해자는 피해자에 대한 직접적인 사죄 없이도 죗값은 판결로서 국가에게 치르고, 용서는 보이지 않는 하나님에게 청하여 그만의 방식으로 평화를 얻을 수 있다고 생각한 것이다. 그러나 피해자의 경우는 다르다. 국가로부터 배상은 제도화되어 있지만, 극히 제한적이어서 진정한 마음의 치유를 이루는 것과는 커다란 괴리가 있다.

 

세기의 흉악범 유영철의 연쇄살인사건 피해자 고종원 옹은 복수심을 극복하고 용서를 택함으로써 사랑을 실천한 분이다. 그의 아내와 4대 독자인 아들 그리고 노모는 모두 유영철에 의해 무참하게 살해됐다. 그는 깊은 상처와 분노로 복수심에 사로잡히기도 했고 자살까지 수차례 생각했다. 그러나 그는 가해자를 용서함으로서 새로운 삶을 찾는 길을 택했다. 그래서 지금도 사형수들의 묘소에서 거행되는 위령미사에서 그를 만날 수 있다. 그는 그에게서 사랑하는 모든 이를 앗아간 가해자를 용서함으로써 마음에 남아 있는 복수심을 지우고 평화를 찾는 경지를 터득하고자 하고 있다.

 

‘복수는 죽은 자를 위한 것이고, 용서는 산자를 위한 것’이라는 말이 있다. 내 마음이 편하고 행복해지려면 상대를 이해해야 하고, 상대를 이해하면 비로소 용서가 되고 내 마음에 평화가 찾아온다. 엄밀히 말하면 용서는 가해자를 위한 것이라기보다는 피해자 자신이 평화를 찾고자 함이다. 진정한 용서는 상대를 동정하고 사랑함으로써 자신이 기쁨을 느끼는 것이다. 그리고 이것은 우리 스스로가 자신의 정신세계를 부단히 가꾸는 진지한 삶의 자세를 유지할 때 비로소 이루어질 수 있다.

 

이백철 경기대학교 교정보호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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