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한때 싸이월드에 일기를 쓴 적이 있다. 편리성을 이유로 뒷일은 생각하지 않고 각종 사진과 속내를 모두 쏟아 놓았다. 그 후 잊고 지내다가 어느 날 싸이월드 해킹 기사를 보고 들러보니 부끄럽기 그지없기도 하지만 누군가가 의도를 가지고 글 또는 사진을 퍼 나른다면….
휴대폰에는 내 위치 정보를 고스란히 저장되고 있다. 어디에서 누구와 통화를 하고 누구와 무슨 문자를 나누고, 무엇에 관심이 있어 정보를 검색했는지, 그리고 무슨 신문을 읽었는지를 모두 알려준다. 또 신용카드는 어디서 무엇을 먹고 온·오프라인에서 무엇을 구입하고 어디서 잤는지를 다 기록하고 있다. 인터넷을 열면 내 성향을 파악해 읽을 만한 기사를 제공해주고, 한 번이라도 검색한 상품을 끊임없이 화면에 보여주면서 구매 욕구를 자극한다.
여기에 더해 내가 만나고 이야기를 나누는 대부분 사람들은 당연히 휴대폰을 손에 들거나 옆자리에 놓아두고 대화를 한다. 맘만 먹으면 나누는 모든 대화를 녹음할 수 있다. 비단 휴대폰만이 아니다. 볼펜모양이나 목걸이, 안경까지 음성녹음을 넘어 비디오카메라가 장착되어 실시 간 촬영이 가능하다. 어디 이뿐이랴. 동네 골목골목은 물론 고속도로까지 모든 길거리는 촘촘히 CCTV가 촬영을 하고 있다.
한동안 도청과 미행의 공포에 시달린 적이 있다. 그 옛날에는 지금에 비하면 아주 순진한 방식이다. 전화 통화 중 상대 목소리가 잘 들리지 않거나 잡음이 많으면 도청을 의심했고, 낮 모르는 사람과 몇 번만 마주쳐도 혹시 미행자인지 긴장했다. 지금은 더 교묘하고 더 은밀하게 그리고 공개적으로 책상머리에서도 우리 일거수일투족은 모니터링 된 채로 살아간다. 맘만 먹으면 네가 그날 누구를 어디서 만나고 무엇을 먹었고 무슨 이야기를 했는지 다 알 수 있는 시대를 산다.
한편, 정보 수집과 관리는 거대한 조직에 의해서만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고 사인 간 통화나 대화 역시 녹음되는 경우를 흔히 본다. 대한민국의 지축을 흔든 최순실-박근혜 사건에서 보듯 이익을 앞에 놓고 의기투합하던 그 순간에도 모든 만남은 기록되고 통화는 녹취되었다.
녹취는 강의실에서도, 상사의 업무 지시에도, 친구들과 어떤 일을 도모할 때도 녹음되어 무기 역할을 하기도 한다. 문제는 개인 간 이런 정보기록은 인간관계를 겉돌게 하고 상호 불신하게 만들어 친밀한 관계를 맺지 못하게 함으로 공동체를 파괴한다. 또한 대화 과정에 자기 검열은 물론 감정을 드러내는 깊이 있는 대화도 어렵게 해 인간을 고립시키는 한 역할까지 한다.
우리는 모든 정보가 노출된 사회에 살고 있다. 누구도 정보노출에서 자유로울 수 없기 때문에 정보 수집과 관리에 더 엄격해야 할 것이다. 그리고 짧은 선거 기간으로 인해 이번 대선 과정에 쟁점이 되지는 못하지만 다음 정부에서는 이명박 정부의 대규모 민간인 사찰처럼 정권 유지를 위해 정보를 불법 사용하는 것을 제한하기 위한 제도적 장치가 모색되어야 할 것이다. 또한 편리의 상징인 정보통신 사용의 부정적 측면에 대한 시민사회의 노력도 필요하다.
한옥자 경기도가족여성연구원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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