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과 종교] 공원사용 지침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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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국여행을 할 때마다 부러운 것 중 하나가 공원이다. 요즘은 대형 쇼핑몰이나 테마파크 등이 새로운 관광명소로 부상했지만 공원은 여전히 그 도시의 역사와 문화를 즐기기에 가장 좋은 장소이다. 이 거리, 저 거리를 돌아가면 어김없이 나타나는 크고 작은 공원은 잠시 쉬어가거나 사람 구경을 하며 시간을 보내기 좋아서 여행 중 즐겨찾게 된다.

 

자연의 아름다운 풍광이나 넓게 펼쳐진 잔디밭 위에서 여유 있게 거니는 행락객들과 조깅이나 산책, 가벼운 운동을 즐기는 사람들, 그리고 아이들과 함께 나들이 나온 가족의 모습은 프랑스 인상주의 화가 조르주 쇠라의 그림에서 보듯이 근대적 풍경 중 하나이다. 

그 모습은 이제 우리나라에서도 낯설지 않은 풍경이 되었지만 뉴욕의 센트럴 파크나 뮌헨의 잉글리시 가르텐 같이 도심의 절반을 차지하는 공원이 주는 여유는 없다. 울창한 숲과 맑은 하늘, 그리고 역사적인 기념물과 건축물, 공원 곳곳에 펼쳐지는 크고 작은 공연, 그리고 특별한 날이나 계절에 따라 벌어지는 축제와 행사들은 우리나라 공원에서는 찾아보기 어려운 것들이다.

 

최근 들어 한국에서도 여러 도시에 공원들이 많이 만들어졌지만, 관 주도의 행사나 상업적 축제가 아니라 시민들이 자연스럽게 어울리며 만들어내는 자발적인 문화가 없는 이유는 무엇일까?

얼마 전 연구를 위해 해외여행을 다녀왔다. 그 일정 중 명상 워크숍에 참가했는데, 이번 워크숍은 명상센터가 아니라 도심 한가운데 위치한 식물원에서 개최되었다.

종교행사지만 공원이나 대학 캠퍼스, 공공시설을 활용한 경우가 흔히 있기 때문에 나에게는 특별하지 않았지만, 모처럼 햇볕도 따뜻하고 꽃들도 활짝 펴서 불자뿐 아니라 일반 시민까지 참가하여 즐겁고 유익한 시간을 가졌다. 행사를 주최한 스님들에게 물어보니 임대한 식물원 부속건물은 일반 시민들에게도 대여하는데, 비영리행사라고 할인을 받았다고 했다. 그 이야기를 들으며 얼마 전 한국에서 있었던 일이 생각났다.

 

내가 참여한 모임에서 시민들을 위한 공개 행사를 하려고 관할 구청에 공원 이용에 대해 문의했더니 일체 행사를 허가해주지 않으며 잔디를 보호하기 위해 잔디밭 사용이 제한될 수 있다는 답신을 받았다. 행사를 허가하지도 금지하지도 않지만 만약 임의로 행사를 진행하다가 민원이 발생하면 바로 철거시킨다는 것이었다.

 

해당 관청의 입장은 문제가 생기지 않는다면 어떤 행사를 치러도 상관하지 않지만 문제가 발생할 경우 관청에서는 책임지지 않겠다는 것이었다. 언뜻 보면 아무 제약이 없는 듯하지만 행사를 진행하는 입장에서는 어떤 일로 민원이 발생할지 예측할 수 없기 때문에 행사를 진행할 수도 없고 안 할 수도 없는 곤란에 빠지게 된다.

 

결국 우리나라 공원에서는 소음을 발생하거나 잔디를 훼손하는 행동은 허용되지 않기 때문에 산책이나 가벼운 운동 외에 문화행사를 열기는 불가능하다. 아무리 훌륭한 공간이 있어도 그 공간을 편안하게 즐길 수 없다면 그림 속의 떡에 불과하지 않는가.

 

공원은 시민들의 삶과 문화 활동이 이루어지는 장소이다. 녹지도 중요하고 주변 건물에 거주하는 분들의 편리도 중요하지만 공원에서 이루어지는 각종 문화활동에 대한 새로운 접근법이 필요하지 않을까? 정부기관은 문제가 생기지 않으면 그만이라는 무사안일한 태도를 지양하고 시민들이 자발적으로 활용할 수 있게 공원시설을 활용하는 방법과 사용하는 기관들을 위한 지침, 그리고 민원에 대한 대책들을 강구하지 않는다면, 공원이 시민들이 어우러져 즐길 수 있는 공간으로 탈바꿈하기는 어려울 것 같다.

 

명법 스님 은유와마음연구소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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