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005년 맑고 화창한 어느 날 아침, 독일 프랑크푸르트 주변 하나우의 전철역에서 놀라운 장면이 벌어졌다. 출근길 시민들이 탄 ICE 고속열차가 역을 막 떠나려는 순간 검은 복면의 20대 청년이 ‘닌자’처럼 바람막이로 뛰어들더니 고속열차 손잡이에 매달렸다.
그러고 이 서퍼는 20분 동안 시속 250㎞로 달리는 고속열차에 죽을힘을 다해 매달려 있었다. 승객들은 보나마나 그가 죽을거라며 연방경비대에 신고했다. 하지만 이 서퍼는 열차가 도착했을 때 손하나 다치지 않고 살아 있었다.
젊은이들이 이렇게 무모하게 자기 목숨을 위험에 빠뜨리는 이유는 무엇일까?
일반적으로 단순한 과시충동이 아니라 소외감이나 인정받고 싶은 욕구 등이 원인이라고 분석된다.
이러한 행동을 ‘허세’라고 한다.
인류학자 피터 매캘리스터(서호주 대) 교수는 “무모하게 용기를 과시하려는 젊은 남성들의 보편적이고 충동적인 본능 때문”이라고 주장한다. 누구나 젊었을 때는 그러한 ‘허세의 충동’은 갖고 있다는 설명이다. 충동은 갖고 있으나, 행동으로 옮기지 않을 뿐인 것이다.
피터 교수는 이러한 허세가 매력적으로 보이는지에 대한 조사를 실시했다.
조사결과, 여성은 연인이나 동성친구의 허세를 별로 매력적으로 보지 않는 것으로 나타났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트레인 서퍼 등 젊은 남성들은 자신의 허세가 여성에게 제대로 신호를 주지 못한다는 사실을 눈곱만큼도 알아차리지 못한다고 한다. 멋지지도 못하고 위험만 무릅쓰는 행동까지도 여성에게 매력적으로 보일 거라고 착각한다고 한다.
반면 남성은 동성친구의 허세를 ‘멋있게 느낀다’는 답이 많았다고 한다. 이 말은 남성이 허세를 부리는 진짜 상대는 여성이 아닌 다른 남성이라는 의미다. 즉, 아무 이득을 볼 게 없는데도 가까이 위험을 무릅쓴다고 자신을 광고함으로써 ‘막강한 연합 파트너’로서 가치가 있다고 강조하는 것이다. 허세와는 좀 달라도 ‘힘 있고 특권이 있는’ 남성들에게 동성친구들이 꼬이는 것도 연합파트너로서 가치가 있기 때문일 것이다.
이 같은 남성과 남성의 유대, 즉 ‘형제 간의 유대’ 현상은 인간사회를 구성하는 중심 원칙이라고 한다. 1987년 이상문학상 수상작인 이문열의 소설을 각색한 영화 ‘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1992년 감독 박종원)에서 보이는 또래 조직 내에서의 ‘권력’과 ‘허세의 효과’로부터 이해가 될 듯하다.
한편 여성은 ‘허세’와 관련해 훨씬 이성적(理性的)이라고 인류학자들은 말하고 있다.
여성은 남을 도우려고 하는 등 목적이 분명한 ‘이타적인 행동’을 하는 영웅에게는 큰 호감을 갖는다고 한다. 지구를 구하는 배트맨, 백성을 구하는 홍길동, 어둠을 밝히는 초인 같은 경우가 이에 해당될 듯하다.
심지어 이타적 혹은 영웅적인 대담함을 보인 인물에 대해서는 섹시하다고 생각할 수 있다고 한다. 이 때문에 피터 교수는 “여성에게 매력적인 사람이 되려면 진정한 이타심과 용기를 갖춰야 한다”고 조언했다.
김신호 인천본사 경제부 부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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