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병역이행의 ‘노블레스 오블리주’를 기대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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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언론 매체를 접하다 보면 ‘흙수저, 금수저’라는 말이 사람들의 입에 자주 오르내린다. 개인의 재능과 노력보다는 부모로부터 물려받은 조건과 환경에 따라 태어날 때부터 계급이 나눠진다는 자조적인 표현의 신조어이다. 

금수저는 금수저를 물고 태어났다는 것으로 좋은 가정환경과 경제적 조건을 가지고 태어났다는 뜻이고 반대로 흙수저는 부모의 능력이나 형편이 넉넉지 못해 경제적 도움을 전혀 받지 못하는 사람을 뜻한다.

 

최근 한 언론사의 설문조사에 따르면, 이른바 ‘수저 계급론’에 동의하냐는 질문에 응답자의 약 85%가 ‘부인할 수 없는 대한민국의 현실’이라고 답했고, 반면 ‘만들어진 말, 현실이 아니다’라고 답한 사람은 15%에 그쳤다고 한다. 특히 병역과 취업 문제를 앞둔 20~30대 젊은이들은 이 ‘흙수저, 금수저’ 논란에 더욱 민감한 것으로 조사되었다고 하니 우리 사회의 현실태를 짐작할 수 있는 대목이다.

 

우리 사회가 왜 이 ‘흙수저, 금수저’ 논란에 민감한 것일까?

그 이유는 높은 사회·경제적 신분을 갖춘 사람들이 그 신분에 걸맞은 도덕적 의무감을 가지고 있지 못하다고 대부분의 사람들이 느끼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런 현상은 우리 사회에 결코 도움이 되지 못한다. 

근·현대사를 보면 사회 구성원들의 도덕적 의무감은 계층 간 대립을 해결해 주는 최고의 사회 통합수단이었다. 사회적 난국을 맞았을 때 국민들이 도덕적 의무감으로 하나 될 수 있다는 것은 엄청난 사회적 자산이며 에너지이다. 특히, 이때 국민을 하나로 통합하고 국가적 역량을 총집결 시킬 수 있는 것은 무엇보다도 기득권층의 솔선수범 자세일 것이다.

 

지난 3월21일 고위 공직자와 고소득자 및 그 자녀, 연예인, 체육선수 등의 병역을 특별관리 하는 내용의 병역법 일부 개정 법률이 공포되어, 병무청이 본격적인 시행 준비에 들어갔으며 이 제도는 오는 9월22일부터 전면 시행될 예정이다.

 

기존에는 1급 이상 고위 공직자와 자녀의 병역사항을 관리하였다면 이번 개정으로 인해 4급 이상 공직자와 고소득자 본인과 그 자녀, 체육선수, 연예인이 포함되어 병역회피 행위에 대한 감시 범위가 더욱 넓어지게 되었다. 이른바 고위 공직자, 연예인, 스포츠 스타 등 사회특권층의 병역사항을 별도 관리하게 되는 것이다. 이 대상자들은 병역준비역 편입을 시작으로 병역판정검사를 거쳐 현역 또는 사회복무요원으로 복무하거나 전시근로역(5급) 또는 병역면제 시까지 그 병역사항을 별도로 분류하여 면밀히 모니터링하고 관리하게 될 것이다.

 

병무청은 이 내용을 병역법에 담기 위해 2004년부터 노력하였으며 국회를 통과하기까지 13년이 걸렸다. 이러한 길고 긴 ‘산통’을 통해 만들어진 법이 잘 작동되고 제도적 실효성을 거두기 위해서는 국세청, 체육·문화단체, 스포츠 에이전시, 연예기획사 등 관련 유관기관의 적극적이고 자발적인 협조가 무엇보다 절실히 요구된다.

 

병역 의무는 대한민국 국민이라면 누구나 공정하게 이행하여야 한다. 병역 의무는 개인의 사회적, 경제적 우월 의식 속에 저울질할 수 있는 선택의 대상이 아니다. 법적의무감이나 도덕적 의무감에서 우리사회가 철저하게 가꾸고 지켜야 할 공동체의 가치이다. 그런 의미에서 이번 공직자, 연예인 등의 병적관리 대상 확대 개정은 사회지도층의 공정하고 투명한 병역이행과 노블레스 오블리주 문화정착 차원에서 현재 대한민국의 시대적 요구를 반영한 것이라고 생각한다.

단순히, 이 제도의 시행이 사회지도층의 병역회피 행위가 사라지길 기대하는 것을 넘어서 사회지도층이 주도적으로 병역이행의 모범을 보이는 ‘노블레스 오블리주’ 정신을 실천하는 기회가 되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이러한 분위기가 확산된다면 병역이 자랑스러운 사회분위기 정착과 국민통합에 크게 기여할 것으로 생각된다.

 

송인호 경기북부병무지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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