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님께서 모든 거짓과 불의, 공산주의를 이 땅에서 떠나가게 할지어다.” 1월 22일, 어느 대형교회 목사가 전한 설교의 일부다. “우리나라가 이 난국과 위기를 극복하려면 거짓과 불의를 미워하는 사람들이 일어나야 합니다. 애국하는 국민들이 태극기를 들고 나서서 외치고 있습니다.
이 일에 그리스도인이 앞서야 합니다.” 어느 유명한 목사는 “다윗은 하나님께 ‘나의 원통함을 굽어살펴 달라’고 기도했습니다. 하나님이 그의 기도를 들으시고 왕으로 다시 세우셨습니다. 오늘 우리가 기도할 때에 하나님께서 대통령을 다시 복귀시켜주실 줄로 믿습니다”라고 설교했다. 비단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시계를 되돌려 보자.
1973년 5월1일, ‘제6회 대통령 조찬 기도회’에서 한국대학생선교회 김준곤 목사는 이렇게 설교했다. “민족의 운명을 걸고 세계의 주시 속에 벌어지고 있는 ‘10월 유신’은 하나님의 축복을 받아 기어이 성공시켜야겠습니다.
당초 정신혁명의 성격도 포함하고 있는 이 운동은 우리 코앞에 있는 마르크스주의와 이미 우리의 문제가 아닐 수 없는 세계의 망령인 허무주의를 초극하는 새로운 정신적 차원으로까지 승화시켜야 됩니다.” 5·16 이듬해인 1962년 12월25일, 한경직 목사의 성탄절 설교다. “학생 혁명 이후에 온 사회가 어지러워졌습니다. 곳곳에 데모와 싸움이 일어났습니다. 사회가 싸움판이 되고 말았습니다. 그래서 군사혁명이 일어날 수밖에 없었습니다.” 더 거슬러 일제강점기로 가본다.
1941년 장로교 목사 김종대의 글이다. “이 시국 하에 종교도 국가 운동의 일익으로 활동하여야 할 것이다. 바울의 국가관은 무엇을 가르치는가? 그는 국법에 순종하고 통치자를 신성시하지 않았는가? 그런고로 기독교는 국가사업에 가장 중요 역할을 하여야겠다. 기독교도는 국가(일본)의 충복이 되어야 할 것이다.” 감리교의 신흥우가 1939년에 쓴 논설이다. “예수도 우선 첫째로 ‘그 나라를 사랑하라’고 가르치시고 있다. 말할 필요도 없거니와 우리나라는 대일본제국이다.
우리 조선 기독교인도 우선 첫째로 대일본제국의 신민이다. 금일의 우리는 종교인이기 전에, 조선인이기 전에, 우선 첫째로 일본인이라는 것을 망각해서는 안 된다. 천황폐하의 충성스러운 적자로 오직 일본을 사랑하라! 제국의 국책에 충실히 순응, 협력, 돌진하라. 이것이 조선 기독교도에게 주어진 신의 명령이다.”
어떤 종교이든 국가권력과 긴장이나 협력, 또는 분리 관계를 맺기 마련이며, 대개는 대립이나 충돌을 피하고 협력 관계를 유지하려는 경향을 띤다. 이해 못 할 바는 아니지만, 협력과 유착이 지나치다 보면 신앙의 정체성을 잃기 십상이다.
본디 기독교 신앙은 사람이 만든 그 어떤 가치나 제도, 권력이나 권위 따위를 절대시 하거나 신성시하지 않는다. 예수가 그러했듯이, 기독교 신앙은 외려 ‘모든 것 위에, 모든 것밖에 계신’ 하느님을 통하여 현존 질서를 비판·변혁한다. 하여 오늘 기독교는 어느 자리에서 무얼 하고 있는지, 묻고 또 묻는다. 더는 부끄럽지 않으려고.
박규환 숭실대 외래교수·기독교학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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