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 사안이야말로 옳고 그름을 따지면서 서로를 공격하는 방식이 아니라 서로 다름을 인정하고 공적인 논의 과정을 통해서 평화롭게 합의점을 찾아가는, 민주주의의 방식으로 다뤄야 할 사안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작금의 상황은 그렇지 못하다. 어쩌다 이렇게 되었을까. 어디서부터 잘못 되었을까. 잘못 끼워진 첫 단추는 바로 염태영 수원시장의 잘못된 판단이다. 염태영 시장이 이 사안을 비민주적으로 추진한 결과가 작금의 현실을 만들었다고 생각한다.
민주주의는 많은 비용의 지불을 감당해야 하는 체제다. 사회의 다양한 이익과 요구가 모두 호명되고 논의되는 민주주의의 과정이 효율적이기를 기대하기는 어렵다. 하지만 그러한 비용을 지불하는 만큼, 민주주의를 통해 도출된 결론은 사회 구성원에 대한 구속력과 권위가 강하고 또한 그 지속성도 오래간다. 결국 민주주의를 “비효율적인 과정을 감당함으로써 가장 효율적으로 사회적 합의를 실천할 수 있는 체제”라고 정의한다면, 이것이야말로 민주주의만이 갖는 가장 특별한 매력이라고 할 수 있다.
만일 염태영 시장이 이 문제를 처음부터 수원시의회를 중심으로 직간접적 이해당사자들, 전문가 등이 모두 참여하는 공적 논의기구를 통해서 긴 호흡으로 폴어가려 했다면 어땠을까. 아마 상당히 긴 시간동안 진전없는 답답한 상황을 피하기는 어려웠을 것이다. 하지만 다양한 사람들의 참여를 통해 논의의 내용이 깊어지고, 그 과정에서 지역 사회의 발전을 위한 다양한 고민들도 논의될 수 있었을 것이다. 무엇보다도, 결과와는 상관없이, 민주주의를 통해 지역 사회의 갈등을 다루었다는 중요한 경험을 획득함으로써 지방자치와 민주주의의 발전을 위한 더 깊은 논의도 기대할 수 있었을 것이다.
염태영 시장이 이 사안을 다루면서 정확하게 민주주의를 비켜간 결과, 지금 남은 것은 서로에 대한 불신과 감정, 그리고 여전히 풀리지 않고 있는 갈등 뿐이다. 갈등을 다루는 과정에 들어가는 비용을 아끼려다가 오히려 더 큰 비용을 치르고 있는 셈이다. 이 모든 것이 다 염태영 시장 때문이라고 말하고 싶지는 않다. 하지만 가장 큰 책임자임은 분명하다. 권력자가 자신의 통치행위에 대해 책임을 지는 것은 너무나도 당연하지 않은가.
염태영 시장과 수원시는 현재 이 사안을 ‘좋은시정위원회’라는 거버넌스 기구에 위임했다. 이 와중에 수원시의회는 또다시 배제되었고, 무엇보다도 당사자인 염태영 시장과 수원시는 어디론가 사라져 버렸다. 또다시 민주주의를 비켜가고 있다. 우리는 한동안 더 큰 비용을 치러야 할 듯 싶다.
유병욱 광교상수원보호구역 해제반대 범시민대책위원회 집행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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