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과종교] 아직은 먼 종교평화의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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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이웃 종교인들과 함께 “불교와 기독교, 무엇이 같고 무엇이 다른가”라는 주제로 끝장 토론을 가졌다. 오후 2시에 시작된 토론은 저녁 9시 정해진 시간이 지나서 11시까지 계속되었다.

 

그래도 못다한 이야기는 자리를 옮겨서 다음날 새벽 3시까지 이어졌다. 그날 정오에 이틀간의 끝장 토론을 마무리했지만 참석자들 모두 처음 만났을 때보다 더 크게 아쉬움을 느끼며 여름에 다시 모일 것을 약속하고 헤어졌다.

 

만남은 즐거웠고 대화는 진지했다. 서로에게 배울 것도 많았고 무엇보다 진실하고 좋은 사람들이었다. 최근 들어 학자들과 밤을 새며 치열하게 토론한 기억이 드물다. 서로 갈등을 빚고 있는 두 종교, 불교와 기독교 전공학자들의 대화라면 귀를 의심할 사람들이 더러 있겠지만 진실로 깊은 학문적 사색과 종교인으로서의 고민을 함께한 자리였다.

 

다종교사회인 한국에서도 종교 간의 갈등을 해결하려는 다양한 모임들이 있지만 이처럼 진지하게 논의가 이루어졌던 것은 레페스 심포지엄이 시작된 계기의 특별함 때문일 것이다. 2016년 1월 한 기독교인에 의해 김천 개운사 불상이 모두 파손되는 충격적인 사건이 일어났다. 

언론을 통해 소식을 접한 기독교인 한 사람이 자신의 페이스북에 사과의 글을 올렸다. 그리고 기독교인으로서, 목사들을 양성하는 교육자로서 그는 사죄에 진정성을 더하기 위해 개운사 불상복원을 위한 모금 운동을 시작했다.

 

그렇게 모인 성금은 개운사에 전달되었으나 종교평화를 위한 활동에 써달라는 개운사 측의 간곡한 고사로 레페스 포럼에 기부되었다. 페이스북에서 시작된 작은 모금활동으로 과격한 기독교인에 의한 훼불사건으로 기록되었을 이 사건은 새로운 종교평화운동의 계기가 된 것이다.

개운사 주지인 진원스님이 다른 급한 일로 참석하지 못하게 되어 뒤늦게 내가 그를 대신하여 참가하게 되었는데, 이 모임의 진정성이 불교계 안의 문제로 고심하던 나를 종교평화 모임으로 이끌어낸 진짜 요인이었다.

 

하지만 이 땅에서 종교평화는 아직 요원한 것 같다. 그 운동을 시작한 서울기독교대학의 손원영 교수가 지난주 그의 대학에서 파면을 당했다. 사유는 ‘성실의무 위반’. 학교 측의 논리는 개운사 불당복원모금이 우상숭배 행위고 따라서 학교의 설립취지에 어긋난 행동이라는 것이다.

 

손원영 교수야말로 수많은 훼불사건에도 침묵을 지켰던 목회자들보다 더 철저하게 “내 이웃을 사랑하라”는 예수그리스도의 가르침을 실천한 기독교인이 아닌가. 서로 다른 종교가 공존하는 한국사회에서 법질서를 존중하는 시민으로서 할 수 있는 바람직한 행동이 아닌가.

 

나는 비록 자신이 저지른 일은 아니지만 진정으로 사죄하는 그의 모습에서, 목회자를 양성하는 교육자로서의 책임을 통감하는 그의 자세에서, 심포지엄 당시 징계위원회에 회부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의연했던 그의 태도에서 동료로서의 연대의식과 존경의 마음을 갖게 되었다.

 

상을 주어도 모자랄 판에 그것이 파면의 사유가 되었다는 것은 정말 납득할 수 없는 일이다. 그 덕분에 기독교인에 대한 오해와 불신이 불식되고 종교평화 논의가 시작되었는데 정녕 종교평화는 서울기독교대학의 총장과 이사들이 바라는 바가 아니라는 말인가.

 

오해와 차이를 넘어서는 힘은 서로에 대한 신뢰이다. 종교인들이 그들이 속한 종교 안에서뿐만 아니라 그들의 종교 바깥에서도 신뢰의 원천이 되어야 한다. 이제 나는 안다. 우리에게도 훌륭한 기독교인이 있음을. 그러므로 이 땅에 종교평화가 실현되리라는 것을. 손원영 교수의 용기 있는 행동을 지지하며 대학 측의 부당한 처분이 하루빨리 철회되기를 바라마지 않는다.

명법 스님 은유와마음연구소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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