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시론] 손잡고 함께 가는 지혜가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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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남주 시인의 ‘함께 가자 우리 이 길을’이란 시에서 ‘가다 못가면 쉬었다 가자. 아픈 다리 서로 기대며’라는 구절은 늘 마음에 와 닿는다. 전후 문맥을 보면 힘든 사람을 위해서 쉬었다 함께 가자는 뜻이 담겨 있다. 손잡고 함께 간다는 것은 빨리 가자고 재촉하는 것이 아니다. 

올해도 대학입시가 끝나고 또다시 초, 중, 고 학생 자녀를 둔 부모들은 조급한 마음에 자녀들의 손을 이끌고 재촉한다. 자녀가 유명 강사의 강의를 잘 이해 못하면 보충 과외를 따로 시키기도 하고 초등학생이 학교와 학원 몇 군데를 돌고 귀가하면 파김치가 되기도 한다. 20세기 암기식 공부방식이 여전히 대학입시에 요구되고 있는 지금 부모들에게만 남과 달리 느긋하라고 할 수만은 없다.

 

그러나 그 조급함이 자녀가 오히려 독립된 성인으로 성장하는 데 꼭 필요한 기회를 박탈할 수도 있다면 다시 생각해 볼 일이다. 대학교수들로부터 요즘 학생들은 시키는 것은 곧잘 하는 데 스스로 찾아서 하는 능력은 부족하다는 지적을 들은 적도 있다.

시간이 걸리더라도 혼자 끙끙거리며 고민해 본 경험은 나중에 세상에 나가 정답이 없는 현실문제에 부딪혔을 때 큰 도움이 될 것이다. 더욱이 소위 명문대학을 나와도 취업이 안 되고 한 세대가 지나기 전에 기존 직업의 상당수가 없어질 거라고 하는 데 계속 기존의 부모 노릇을 답습하는 것이 과연 옳을까. 자녀 생각이 부모 입장에서 불안하더라도 처음부터 말리지 말고 진지하게 들어주고 시간을 가지며 조언을 해 주는 것은 어떨까. 

그래도 자녀가 뜻을 꺾지 않고 부모가 보기에도 즉흥적인 결정이 아니라면 존중해 주고 기회를 한 번 주는 것이 좋다. 어른들도 실패의 시간을 통해 성장해 온 만큼 실패가 두려워서 자녀를 붙들지는 말자. 고민 끝에 한 결정이라 쉽게 중도 포기하지도 않을 것이다. 가정은 최초의 학교이고, 부모는 최초의 선생님이다. 부모가 자녀의 결정을 존중하고 믿어주면 자녀도 부모에 대한 신뢰가 커지면서 다른 사람을 신뢰하는 첫 걸음마를 배운다. 자신이 결정한 것이니 억지로 하는 것보다 더 열심히 할 것이다.

실패해도 스스로 결정한 것이라 책임지는 법을 배우고 실패의 아픔을 통해서 더욱 성장한다. 부모는 재촉하는 존재가 아니라 옆에서 묵묵히 지켜보며 자녀가 손을 내밀 때 잡아 주고 도와주는 든든한 존재다. 자녀와 보조를 맞추어 함께 가며 힘들 때 아픈 다리 서로 기대며 어깨를 두드려 주는 동반자이어야 한다.

부모의 이러한 모습을 보고 자란 자녀는 사회의 각박함에도 잘 견디며 오히려 주위 사람을 배려하여 손잡고 함께 갈 수 있는 힘을 발휘할 것이다. 부모가 변해야 자녀가 바뀌고 세상을 더 좋게 바꿀 수 있다. 아프리카 속담에 ‘빨리 가려면 혼자 가고 멀리 가려면 함께 가라’는 말이 있다. 더 좋은 세상을 만들려면 함께 손잡고 가야 한다는 뜻이라고 한다.

 

여전히 분열되고 혼잡한 탄핵정국이다. 헌법재판소 탄핵판결 선고가 가까워지자 정당들과 대선예비 후보자들이 혼자 빨리 가서 1등 해 보겠다고 계산기를 두드리며 더 극성을 부리고 있다. 누가 되든 차기 대통령에게 국민과 손잡고 함께 가는 진정한 동반자 역할을 기대할 수 있을지 의문이다. 이럴 때일수록 살만한 세상을 향하여 어른들이 더디더라도 자녀와 손잡고 함께 가는 동반자가 되려는 큰 지혜에 동참해야 한다.

 

이정호 경기중앙지방변호사회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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