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경제] 오미상인과 기업가 정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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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토의 인근에 오미라고 불리는 지역이 있다. 일본에서 가장 큰 비와코(琵琶湖) 호수를 둘러싼 곳으로 호수의 물줄기가 오사카만으로 흘러간다. 이 물줄기를 근강(近江)이라 하는데 과거 천년 동안 일본의 수도였던 교토와 가장 가까운 강이라는 뜻이며 ‘오미’라고 읽는다. 저성장시대를 맞아 오미상인의 철학을 새겨 볼 필요가 있다.

 

일본은 근대화 이전 상인정신을 토대로 국가의 발전과 부를 축적해 왔다. 그들은 상업자본을 축적하여 일본의 근대화에 기여했고 일찍부터 기업가 정신을 실천해 왔다. 이런 전통을 가진 일본에서 오사카, 이세, 오미지역 상인을 3대 상인이라고 부른다.

오늘날에는 나고야(名古屋)와 도쿄 긴자(銀座) 상인을 더해 5대 상인이라고도 하지만 일본의 상인정신의 뿌리는 역시 3대 상인에서 찾을 수 있다. 그렇다면 3대 상인이 될 수 있었던 정신적 뿌리는 어디에서 온 것일까.

 

오사카 상인정신은 이시다 바이칸(1685~1744)에 의해 정립됐다. 이들에게 상업은 인격 수양의 길이라는 것이었다. 오늘날에도 오사카의 유서 깊은 가게 앞에는 상호가 그려진 ‘노렌(暖簾)’이란 무명천이 걸려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노렌은 신용과 자부심의 상징으로 이어져 오고 있다.

 

이세(伊勢) 상인은 행상으로 출발했으나 고급면포를 취급하면서 상인의 명성을 얻게 된다. 대표적인 거상이었던 하세가와 지로베에(長谷川次郞兵衛)는 “무사에게 무사도가 있듯이 상인에게도 상도가 있다”라는 신념을 강조했고, 반드시 직원들과 협의한 후 결정을 내리는 민주적인 합의제도의 전통을 세웠다.

 

우리에게는 상대적으로 덜 알려져 있지만 오미상인은 교토 인근의 5개 지역 출신 상인을 일컫는데, 이들은 긴 막대저울(天秤棒)을 들고 다녔다고 한다. 그들은 베, 옷감, 약, 칠기 등을 지고 오로지 걸어서 북으로 1천㎞ 밖의 홋카이도부터 남으로 1천㎞의 큐슈지방까지 행상을 다녔다. 더구나 그들은 중국은 물론이거니와 동남아지역까지 다녔다고 하니 놀랍다.

 

오미 상인의 기본정신은 한 푼의 이익을 위해 천리 길이라도 간다는 것에서 찾을 수 있다. 전국을 행상으로 다녔기 때문에 지역별 정보를 잘 활용했고 나아가 해외진출까지 성공한 것이다. 

또한 기업은 하루아침에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몇 대에 걸쳐 공을 들여야 한다는 도덕성도 가르쳤다. 이들은 1700년대에 이미 손익계산서와 대차대조표 등을 담은 완전한 형태의 복식부기를 사용했다고 하니 상인의 전문성도 갖추었던 것이다.

 

오늘날 우리가 오미상인을 주목해야 하는 것은 기업가 정신에 투철했다는 점이다. 그들은 이윤만을 추구하는 것이 아니라 소비자를 배려하는 마음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바로 산포 요시(三方よし)라는 경영철학이다. 상업이란 생산자, 소비자는 물론 사회전체에 득이 되어야 한다고 강조하고 있다.

 

이런 철학을 근간으로 오미상인의 전통은 지역출신들이 만든 회사에서 잘 나타난다. 바로 상업자본을 산업자본으로 만든 혜안을 가지고 있었다. 오늘날 도요타자동차 뿐만 아니라, 해외진출의 경험을 살린 이토추(伊藤忠), 마루베니(丸紅) 등의 종합상사를 처음으로 만들었고 전통적으로 내려오던 유통, 금융, 방직 등에서 여러 기업들이 두드러진 실적을 보여주고 있다.

 

기업가정신은 산업화가 시작된 18세기에 만들어진 개념이지만 시대적 배경, 기업환경 등의 다른 요인으로 인해 변해왔다. 그러나 그 어떤 시대나 상황에서도 기업가가 갖추어야 할 기본정신은 같다. 바로 기업은 기본적으로 이윤을 창출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기업은 이윤을 사회에 환원하는 사회적 책임도 동시에 가지고 있다. 오미상인의 철학은 여기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기업은 사회전체의 득이 되어야 지속가능하다는 심오한 기업가 정신의 가르침을 담고 있다. 오미 상인의 철학은 저성장시대에 참고해야 할 해법이라고 생각해 본다.

 

이정화 대중소기업협력재단 본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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