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아듀, 2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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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해가 또 저물어 간다. 시간은 브레이크가 없고, 고장도 없는 것 같다. 정채봉 시인의 ‘첫 마음’이라는 시를 읊으며 시작한게 엊그제 같은데 그 첫 마음은 오간데 없고, 새해 품었던 목표는 기억 속에 가물거린다. 우리에게는 1년이라는 기간이 매번 주어지지만, 늘 후회 투성이다. 

그래서 우리의 삶은 전진이 아닌 순환만 있는 것 같기도 하다. 이젠 좋았던 기억은 추억으로 남기고, 나쁜 기억은 경험이라고 생각하며 저무는 해와 함께 갈무리 할 시점이다.

 

우리는 한 번도 가보지 않은 길 위에 살고 있다. 그러다 보니 언제나 반성할 일들도 많이 생긴다. 어느 철학자는 ‘성찰하지 않는 삶은 가치가 없다’라고 했다. 자신이 한 일을 깊이 되돌아보는 경우도 있지만, 문제는 대부분의 사람들은 합리화하는 쪽을 선호하는 것이다.

무엇 때문에 하지 못했다와 같은 결과를 정당화하는 방향으로 믿음을 바꾸곤 한다. 그리고 목표를 미래에만 두는 경우가 많다. 영국의 시인 제이슨 레만은 그의 시를 통해 ‘현재를 살라’고 했다. 영화 ‘죽은 시인의 사회’의 명대사 ‘카르페 디엠(Carpe Diem)’과 일맥상통한다. 봄이 오면 여름을 원하고, 겨울이 오면 다시 봄을 원하듯이 우리는 삶의 마지막 순간까지도 진정 원하는 것을 한 번도 갖지 못한다는 것이다.

 

박노해 시인의 ‘삶의 나이’라는 시에는 세계적인 장수마을로 손꼽히는 터키의 ‘악세히르 마을’ 이야기가 나온다. 이 마을 묘비에는 나이 아닌 나이 같은 숫자가 적여 있는데, 대부분 숫자 20을 넘지 않는다고 한다. 마을 사람들은 ‘최고의 날’이 있을 때만 숫자를 하나씩 기록해 둔 것이다. 즉 최고의 날을 숫자로 새겨 놓은 것이다. 이 대목에서 우리는 오래는 살지만 과연 최고의 날은 얼마나 되는지 곰곰이 생각해 볼 일이다.

 

인간은 목적론적 유기체(teleological organism)이다. 얼마나 오래 살았느냐가 중요한 게 아니라 사는 동안 얼마나 의미 있는 참삶을 살았느냐가 중요하다. 후회 없는 삶을 살려면 삶의 의미와 목적에 대한 인식을 새롭게 할 필요가 있다. 삶의 마지막에 후회하는 것은 이루지 못한 것이 아니라 아예 시도하지 않은 것이라고 한다. 세상에서 가장 슬픈 말이 ‘그럴 수도 있었는데’라는 것과 같다. 살아가는 의미와 가치관을 서로 일치시키는 노력이 필요해 보인다.

 

어느덧 한 해를 마무리하고 내년에 필요한 목표를 세울 시점이다. 새로운 목표를 세우거나 새로운 꿈을 꾸는 것은 언제 시작해도 늦지 않다. 세상에서 가장 실패한 사람은 무엇을 얻지 못한 것이 아니라 왜 사는지 목적을 잃어버린 사람이라고 한다. 목표가 없는 삶은 표류하는 배와 같다. 비록 이루지 못한 목표이지만 전혀 목표하지 않은 것 보다 나은 것 같다. 앞으로 나갈 수 있는 동인을 제공하기 때문이다.

 

셰익스피어는 로미오와 줄리엣에서 ‘Parting is such a sweet sorrow’라고 했다. 슬픔과 기쁨을 뒤로 하고 한 해를 떠나보내야 한다. 헤어짐이 달콤한 슬픔이 될 수 있도록 남은 기간 잘 마무리하길 바라본다. 그리고 내년에는 영원히 살 것처럼 꿈을 꾸고, 내일이 마지막인 것처럼 오늘을 살기를 희망한다. 아듀, 2016!

 

임창덕 경영지도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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