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 칼럼] 꽉 닫힌 지갑부터 열게 해야 한다

박정임 지역사회부장 bakha@kyeongg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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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가 안 좋아 걱정이라고 하면 ‘언제 경제가 좋은 적이 있었느냐?’라고 반문하리만큼 경기침체가 계속되고 있다. 호환 마마보다 무섭다는 말이 나돌 정도로 국가위기 상태였던 IMF 외환위기 시절보다도 더 어렵다고 한다.

지난 9월 말 청탁금지법 시행으로 우려했던 내수 축소는 현실이 되고, 경제 심리는 박근혜 대통령 탄핵 후 더욱 위축되는 모양새다. 오는 1월 미국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의 출범을 앞두고 보호무역주의와 금리 인상 등 대외적인 정책 불확실성도 높아지고 있다.

 

소비가 미덕임을 강조하지만, 서민들은 쓸 돈이 없다. 갈수록 팍팍해지는 살림살이 탓에 위험에 대비하는 보험마저 해지하고 있다. 보험업계에 따르면 올해 상반기까지 25개 생명보험사와 16개 손해보험사가 고객에 지급한 해지 환급금은 14조 7천300억 원에 달한다. 해지환급금은 고객이 만기 전에 계약을 깨고 찾아간 돈이다. 지난해 같은 기간 해지환급금보다 7천억 원 늘었다. 지난해도 최대치를 기록했다고 하니 2년 연속 최대치를 갈아치운 셈이다.

 

불안한 심리에 소비자들은 지갑을 닫아버렸다. 최근 통계청 발표만 보더라도 지난 3분기 전체 가구 중 월평균 지출이 100만 원이 안 되는 가구(2인 이상 가구 실질지출 기준) 비율이 13.01%나 됐다. 2009년 3분기 14.04%를 기록한 이후 7년 만에 최대치다. 월 지출 200만 원 미만 가구 비중은 늘었는데, 이유는 월 지출 200만∼400만 원 가구 비중이 줄어들면서 나타난 현상이다.

 

형편이 어렵다 보니 식료품 등 필수품을 중심으로 지출을 줄이고 있다. 지난 3분기 전국의 2인 이상 가구의 식료품·비주류음료 지출은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3.2% 감소했다. 문제는 4분기 이후 상황이 더 심각해질 거란 전망이다. 그래도 월급쟁이는 좀 낫다. 소상공인과 중소기업 대표들이 죽겠다고 난리다. 물건을 만들어도 팔리지 않으면 재고로 쌓인다. 공장 가동이 줄면 인원도 줄여야 한다. 일자리를 잃으니 당연히 보험이라도 깨서 생활비를 충당해야 한다. 악순환의 연속이다.

 

경기침체를 걱정하는 건 비단 우리만의 얘기는 아니다. 최근 일본 정부는 내수 진작을 위해 매달 마지막 주 금요일 근로자 퇴근 시간을 오후 3시로 앞당기는 방안을 추진한다고 발표했다. ‘프리미엄 금요일’로 이름 짓고 소비촉진을 위한 다양한 캠페인도 펼친다고 한다. 경제단체들도 긍정적인 반응을 보이며 조기 퇴근이 산업 현장에서 실제로 이뤄질 수 있도록 각 기업, 단체들과 구체적인 시행 방식 협의에 들어갔다고 한다.

 

우리도 내수 진작을 위한 정책 마련을 서둘러야 한다. 대외 여건에 좌우되는 수출과 달리 내수는 국내 정책으로도 어느 정도 보완할 수 있기 때문이다. 실제 우리 정부는 청탁금지법 시행 탓인 내수 축소를 우려하며 지난 10월 대규모 할인 행사인 ‘코리아 세일 페스타’를 벌여 소비자의 지갑을 열게 했다. 그런데 소비를 촉진하는 각종 행사가 붐을 타려면 우선 일자리나 소득이 보완돼야 한다. 그렇다고 당장 양질의 일자리를 만들 수는 없다. 경기 침체로 가장 먼저 피해를 보는 저소득층 소득을 늘리는 정책이 강구돼야 한다.

 

연말연시는 그래도 소비가 살아나는 때다. 그럼에도, 올해는 시국이 어수선하다, 구설 타고 싶지 않다는 등등의 이유로 선물도 행사도 줄이고 있다. 청렴 사회로 가는 지름길이 국민을 잠재적 범죄자로 만들고, 돈을 쓸 수 있는 계층마저도 지갑을 닫게 하는 길이라면 그 길로 가는 게 옳은 건지 다시 한번 생각해 볼 일이다.

 

박정임 지역사회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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