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닌게 아니라 막상 이사하고 보니 자동차를 이용하기 어려운 필자입장에서는 불편한 점이 한두 가지가 아니었다. 밤늦게 퇴근할 때나 일찍 회의가 있을 때에는 그냥 관사에 있을 걸 하는 생각이 들 때도 있으니 말이다.
하지만, 시간이 점차 지나며 생활에 익숙해지니 나쁜 것만 있는 것도 아니다. 예전보다 더 많이 걷게 되니 따로 운동할 시간을 덜 내도 되고, 집사람이 아침마다 태워주는 호사도 누리고, 교통이 막힐까 아침 일찍 출근하다 보니 개인 시간을 활용할 여지도 많아졌다.
어제는 천천히 여유를 가지고 집까지 퇴근을 해보았다. 느릿느릿 시간을 보내다 보니 바쁘게 걷는 사람들도 보이고, 길가의 나무들이며 떨어진 낙엽, 예쁜 건물들도 보인다. 일부러 집에서 좀 떨어진 마트에서 내려 사람들 구경도 했다. 저마다 정신없이 어딘가로 걸어가고 걸어가면서도 끊임없이 휴대전화를 보며 뭔가에 매달리는 모습이 낯설게 느껴진다. 무엇 때문에 이리들 바쁘게 사는 걸까?
사람 사는 게 갈수록 각박해진다. 너나없이 빨리빨리, 무한생존경쟁에 내몰리다 보니 누군가를 짓밟고서라도 경쟁에서 이겨 최대한 많은 이익을 챙기려고 한다. 요즘 온 나라를 달구는 어처구니없는 국정농단 사태도 그러한 무한경쟁의 연장 선상에서 벌어진 일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그러나 이런 게임은 승자는 없고 모두가 패자가 되는 게임이 아닌가 싶다.
일시적으로 게임에 이겨도 그런 명예는 오래가지 않을뿐더러 더 많은 이익을 쫓기 위해 안달하면서 시작도 끝도 없는 쳇바퀴 속으로 말려들어 가게 된다. 진 사람들은 좌절하고 비관하며 특히 게임이 불공정하다고 느끼면 그 피해의식은 엄청날 것이다. 이런 시대적인 모순들이 단순히 죄를 저지른 사람들을 단죄하거나 제도ㆍ틀을 바꾼다고 해서 해결될 수 있을까?
결국, 사람의 의식이 바뀌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행복의 근원을 물질, 외부의 인정, 헛된 명예에서 찾는 물질만능주의와 탐욕에서 벗어나야 한다.
헬렌 켈러가 한 유명한 말이 생각난다. ‘행복의 문 하나가 닫히면 다른 문이 반드시 열린다. 그런데 우리는 닫힌 문을 바라보느라 새로 열린 문을 보지 못하곤 한다.’ 이런 생각은 고은 시인의 ‘내려갈 때 보았네. 올라갈 때 보지 못한 그 꽃!’이란 짧은 시가 내포한 뜻과 맥을 같이할 것이다. 삶도 그런 게 아닐까? 어쨌든 난 여유 있는 지금 생활이 좋고 행복하다. 조금 불편하고 힘들더라도 말이다.
서승원 경기지방중소기업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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