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5년 응급구조학과 인연을 시작으로 필자는 20년 넘는 시간을 응급구조사로 지내고 있다. 학생시절을 지나 때로는 응급실에서 소방의 구급대원으로 그렇게 지금은 학교에서 교수로 응급구조사가 되기 위한 후학들과 함께 하고 있다.
후배이자 제자들에게 난 늘 강조하는 것이 있다. 바로 ‘응급구조사의 무지는 죄악’이라는 말인데 필자가 학생 때 학과 교수님께 늘 들었던 말이다. 아는 만큼 보이기 때문에 보고 느끼고 경험을 축적하기 위해서라도 응급구조학에 대한 지식이 필요하다. 대학이지만 야간 자율학습을 하는 것도 이와 같은 취지이기도 하다.
하지만 그 지식이란 것이 머릿속에만 머물고 시험지에서 물어보는 것만 풀어내는 것이라면 의미도 없고 그렇게 해서는 제대로 된 응급구조사가 될 수도 없다. 가장 중요한 것은 바로 위급한 상황에 놓인 사람을 배려하는 마음과 용기다.
결국 사람의 마음이 행동을 결정하는 것인데 단순히 응급처치 방법만 잘 알고 다치고 아픈 사람에 대한 사랑이 없다면 제대로 된 응급처치가 될 리가 업을뿐더러 외상을 입은 사람은 다친 부위만 아픈게 아니라 마음도 아픈데 그러한 것에 대한 교감도 무척 중요하다.
지난해 우리 학과 학생들은 고양소방서의 요청으로 심폐소생술 보급을 위한 플래시몹을 한 적이 있다. 처음 요청 내용을 학생들에게 전달하며 ‘가능하겠는가’하고 물었었다. 강요하는 것으로 비춰질까봐 조심스럽게 물었지만 내심으로는 학생들에게 꼭 하라고 하고 싶었다.
비록 멀리까지 가서 추운 겨울에 광장에서 하는 것이고 또 준비를 하기 위해서는 얼마간의 시간을 또 들여야 하기 때문에 쉽지 않은 것이었으나 심폐소생술을 홍보하는 중요하고 의미있는 일이었기 때문이었다. 다행히도 학생들은 흔쾌히 ‘하겠습니다’ 답을 했다. 이렇게 이쁜 녀석들이 내 후배이자 제자이다 싶어 상쾌한 마음이 들기도 했다.
일반인이 심폐소생술을 하는 것도 이와 비슷하다. 최근에는 응급처치에 대한 정보도 쉽게 접할 수 있고 심폐소생술 교육을 하는 곳도 많아져서 배우기 어렵지 않은데 그렇지만 하는 방법만 안다고 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실제 심폐소생술을 일반인들도 쉽게 할 수 있도록 여러번 변화해왔는데 지금은 가슴압박만이라도 제대로 할 수 있도록 정말 간단하게 교육을 하고 있다. 방법이 어렵지 않다.
하지만 누구나 쓰러진 사람을 발견하고 제대로 심폐소생술을 즉시 실시할 수 있을까? 쉽지 않을 것이다. 그렇게 할 수 있기에는 단순히 심폐소생술의 하는 방법만 아는 것이 아니라 남을 위한 배려, 생명에 대한 존중 즉 사랑이 필요하고 거기에 더해 용기가 필요한 일이기 때문이다.
하나의 상황을 설정해보자. 늦은 저녁 골목길을 가던 사람이 앞에 쓰러져있는 사람이 있는 것을 보았다고. 배운데로 접근해서 의식을 확인하고 119에 신고하고 바로 심폐소생술을 망설임 없이 할 수 있는 사람이 몇 명이나 될 것인가?
위급한 것을 느끼고 도와주려는 사랑하는 마음뿐만 아니라 어떻게 될지 모르는데… 하고 주저되는 것을 극복하는 용기가 필요하다. 그렇게 될 때 의식이 있는지 알아도 볼 수 있고 119에 신고를 할 수도 있는 것이다.
사람을 사랑하는 마음이 있어야 용기가 날 것이고 그래야 조금은 무섭고 조금은 주저되는 상황, 그리고 그냥 지나치는 마음을 극복하고 꼭 필요한 심폐소생술을 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흔히 심폐소생술은 맨손의 기적이라고 한다.
그 기적이 기적으로 남을 것이 아니라 일상에서 언제든지 준비된 많은 사람에게서 벌어질 수 있는 일상이 될 수 있기 위해 필요한 것. 그것은 기술이 아니라 사람에 대한 사랑과 용기이고 그것은 무엇으로도 살 수 없는 사회적 자산이라고 생각한다.
최근 고양소방서에서는 심폐소생술로 다시 한번 생명을 선물 받으신 몇 분을 심폐소생술 홍보대사로 위촉했다고 한다. 어려운 결정을 해준 이분들에게서 배워야할 것은 심폐소생술을 하는 방법이 아니라 생명이 얼마나 중요하고 존귀한지 그러한 생명을 지닌 사람에 대한 배려와 나를 좀 더 용기있게 만드는 심폐소생술 교육이 되길 기대한다.
기은영 서정대학교 응급구조과 학과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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