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과 종교] 절망에 빠진 사회… 괴로움 원인부터 찾아야

최근 수년간 한국은 OECD 국가 중 자살률이 가장 높은 국가였다. ‘헬조선’, ‘N포시대’와 같이 자조적이고 절망적인 말들이 횡행하고, 출구를 찾을 수 없는 절망감이 우리 사회를 짓누르고 있다.

 

절망에 사로잡힌 사람들은 그 괴로움을 없애기 위해 극단적인 선택을 하게 된다. 괴로움을 이기지 못해 어떤 이는 자신의 존재를 지워버리는 자살이라는 방법을 선택하는가 하면, 어떤 이는 자발적으로 사회로부터 자신을 격리시키는 방법을 선택하기도 한다. 

자신의 괴로움을 다른 사람에게 투사하여 전가하는 현상 또한 증가하고 있다. 왕따와 집단 폭력, 묻지마 살인, 총기난사와 같은 폭력은 자신들의 고통과 불만을 타자에게 전가하려는 또 다른 선택으로, 더 큰 사회적 고통을 야기하고 있다.

 

한국 사회뿐 아니라 세계 곳곳에서 절망 어린 탄식이 이어지고 있다. 영국의 브렉시트와 얼마 전 끝난 미국 대통령 선거에 나타난 기성 정치에 대한 실망, 그리고 그것에 대한 반응으로 자국 중심주의, 시리아 난민, IS의 테러, 끝나지 않는 중동 사태는 절망의 서로 다른 모습이다. 보편적 가치를 믿을 수 없는 후기 근대에 절망은 시대적 증상이 되어 버렸다.

 

절망이 문제인 까닭은 문제의 원인을 성찰하는 노력을 장려하기보다 괴로움이 제거될 수만 있다면 그 방법이 무엇이든 좋다는 비이성과 폭력을 자라나게 하기 때문이다. 불교에서는 괴로움을 삶의 진실이라고 말한다. 하지만 괴로움은 변경할 수 없는 사태가 아니다.

괴로움은 어떤 원인에 의해 발생한 것이므로 그 원인을 제거하면 괴로움이 없는 상태에 도달할 수 있다는 것이 불교 가르침의 핵심이다. 나는 이 말씀이 희망의 메시지라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원인이 있어서 발생한 것이라면 원인을 제거하는 순간, 그 결과도 사라질 것이기 때문이다.

 

그동안 우리사회에서 괴로움의 해결은 자살과 왕따, 악의와 사적 폭력 같은 개인적 방식에 기대어 왔다. 그런 방법은 개인적으로나 사회적으로 결코 문제의 원인을 제거하지 못했다. 절망의 표현만으로는 고통의 해결은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괴로움은 원인이 있어 발생한 것이고 그 원인은 없앨 수 있는 것이라는 사실을 안다면 우리는 극단적 선택보다 문제 해결을 위한 지속적인 노력을 기울일 수 있다. 괴로움의 원인이 있고 해결될 수 있다는 가르침이야말로 단순하지만 삶이 얼마나 고귀한지 깨우쳐주는 가르침이 아닌가!

 

지난 한 달 간 우리는 놀라운 일들을 경험하고 있다. 언론은 연일 입이 다물어지지 않는 새로운 사태를 보도하고 있고 광화문 거리를 채우는 집회 인원은 날마다 역사적 기록을 갈아치우고 있다. 최순실 사태를 통해 그동안 억눌려왔던 대중의 절망감이 한꺼번에 표출되고 있다.

 

그동안 그랬듯이 절망은 좀 더 쉬운 해결, 눈에 보이는 화끈한 변화를 선호하지만 그것은 문제의 해결보다 증상의 완화만 목표로 한다. 우리들이 경험하고 있는 괴로움을 곰곰이 성찰해볼 필요가 있다. 문제를 들여다 볼 용기와 문제의 본질이 아닌 곁가지들을 쳐낼 판단력이 필요하다. 한 사람 한 사람 희망의 등불을 켜고 괴로움을 직시해 그 원인을 성찰하는 용기와 인내가 필요한 때이다.

 

명법 스님 은유와 마음연구소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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