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는 지금] 수에즈 운하사건과 EU 탄생 에피소드

영국이 지난 6월23일 국민투표를 통해 EU 탈퇴를 결정했다. 메이(MAY) 영국총리는 내년 봄부터 영국과 EU간 탈퇴 협상을 시작하여 2년 후인 2019년 봄이면 영국의 EU 탈퇴가 현실화될 것으로 전망했다. 

영국은 1958년 1월1일 출범한 EU의 전신인 EEC(유럽경제공동체)에 가입을 위해 부단히 노력하였으나 프랑스의 반대로 가입하지 못하고 있다가 1973년에야 가입하게 된다. 영국이 어렵게 가입했던 EU를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이민문제로 인해 탈퇴하는 과정을 보면서 과거 수에즈 운하사건으로 인해 EU가 탄생하는 에피소드를 다룬 2006년 7월27일자 더 이코노미스트(The Economist)의 기사를 떠 올려본다.

 

1956년 7월26일 이집트의 나세르 대통령은 알렉산드리아에서 개최된 대중 연설을 통해 수에즈 운하의 국유화를 선언한다. 이에 대해 영국, 프랑스, 이스라엘 3국은 반대 입장을 공유하면서 수에즈 운하를 침공하기 위한 계획을 세운다. 

영국은 최근까지 점령하고 있던 수에즈 운하를 이집트에 넘겨준 것에 불만이었던 차에 원유 수송 등 중요한 해상통로인 수에즈 운하를 위협하는 이집트를 묵과할 수 없었다. 프랑스는 당시 알제리에서 식민전쟁을 치르고 있는 상황에서 아랍의 민족주의 확산을 잠재울 필요가 있었다. 이스라엘은 가지지역으로부터 침투하는 세력들을 방조하는 이집트를 손볼 기회를 찾고 있었다.

 

미국 아이젠하워 대통령은 11월 대통령선거에서 연임을 앞두고 외국에서의 분규에 휩싸이고 싶지 않고, 또한 영국과 프랑스의 이집트 침공으로 인해 아랍 등 제3세계국가들이 공산주의 진영으로 선회하는 것을 우려하여 3국에 의한 이집트 침공에 반대 입장이었다.

미국의 반대 입장도 불구하고 3국은 사전에 협의한 시나리오에 따라 이스라엘의 공수부대가 10·29 시나이 반도를 침공하고, 이어 영국과 프랑스가 이스라엘과 이집트를 중재한다는 명분으로 수에즈 운하 인근 해안에 상륙한다. 사전에 3국의 비밀 협의를 모르고 있었던 미국은 영국의 IMF 구제금융 지원을 빌미로 영국을 압박하여 영국을 수에즈 운하 군사작전에서 손을 떼게 한다.

 

1956년 11월6일 저녁 독일 아데나워(Adenaur) 총리와 함께 있던 프랑스 모레(Mollet) 총리는 영국 이든(Eden) 총리로부터 전화를 받았다. 전화에 따르면 영국은 프랑스와 함께 수에즈 운하에 무력 침공키로 했던 계획을 포기한다는 내용이었다. 이 소식을 접한 아데나워 총리는 “향후 프랑스와 영국은 미국에 비견되는 강대국이 절대 될 수 없다. 

독일은 말할 것도 없다” 라고 말하고 “국제무대에서 유럽국가들이 결정적인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바로 유럽을 통합하는 것이다. 통합된 유럽이 프랑스의 미국에 대한 복수가 될 것이다.” 라고 말했다고 전해진다. 이런 과정을 통해 유럽경제공동체(EEC)의 탄생을 알리는 로마조약(Treaty of Rome)이 바로 다음해인 1957년 3월25일 서명된다. 이후 프랑스는 수에즈 운하사건으로 경험한 영국에 대한 배신감으로 인해 1973년까지 영국의 EU 가입에 철저하게 반대한다.

 

수에즈 운하사건이 EU 탄생의 하나의 계기가 되었다는 점을 회상하면서 영국의 EU 탈퇴는 과연 유럽에게 어떤 영향을 미칠지 궁금해진다. 더 나아가 우리 경제와 외교에는 순풍으로 작용할지 역풍으로 작용할지… 지금부터 대비해 나가야 하겠다. 새삼 오늘따라 세계가 더 작게만 보인다.

 

김상일 道 국제관계대사·前 주시카고총영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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