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경기도립국악단의 놀랍고 자신만만한 도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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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의 경기도립국악단의 행보는 놀랍고 자신만만하다. 국악기가 가진 한계에 대하여 명확하게 그 문제점을 인식하고, 이 문제를 도전적으로 해결하고 있다. 

현재 활동중인 국악관현악단의 행보와는 명백하게 선을 그으면서 미래를 지향하고 있다. 많은 국악관현악단에서 전통적으로 걸어온 길을 애써 외면하고 또 다른 파격적적 변화를 적극적으로 모색하고 있다는 점에서 놀랍고 자신만만하다고 생각한다.

 

그동안 국악관현악단에서도 변화를 모색해온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변화를 모색하는 움직임은 일정하게 조심스러운 것이었다. 국악이라는 테두리를 스스로 인정하고 그 안에서 자족적으로 살아온 감이 있다. 

그동안 국악관현악단에서 무대에 올린 레퍼토리를 확인해보면 이 점이 분명해진다. 전통곡의 연주를 중심에 두고 연주에 임했다. 이는 지극히 보수적 태도를 견지하는 것이다. 변화를 모색한 것은 전통에 기반을 둔 변형곡, 이를테면 산조협주곡이나 민요와 판소리 협연 연주를 꼽을 수 있다. 

그리고 지금까지 가장 파격이라고 여겨지는 것은 우리 작곡가들이 전통에 기반을 두고 창작한 작품을 연주하는 것이었다. 이들 창작곡은 대체로 국악기의 특징을 충분히 고려하고, 표현영역의 임계점을 충분히 고려해서 작곡되고 연주되었다. 간혹 서양의 작곡가에게 의뢰한 작품들도 모두 국악기의 표현한계를 충분히 배려하고 있다. 그러다보니 국악관현악단의 변화모색에 일정하게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경기도립국악단에서 최근 시도한 연주작품의 변화를 보자면 이것은 진화라기보다는 혁신에 가까운 것이다. ‘치세지음 프로젝트’를 통해 국악관현악의 표현영역을 확장하고 전통악기의 음역을 확장하는 작업을 해왔다. 

이 작업은 근본적으로 한국의 특수한 악기에서, 보편적인 악기로의 지향을 의미하고, 특수한 ‘한국음악’을 글로벌 스탠다드(global standard)로 확장하여 보편성을 확보하겠다는 선언적 의미를 갖는 것이었다. 이 작업은 한국의 국악애호가들의 호사로운 평가를 겨냥한 작업이 아니고, 세계의 무대에 우리음악의 현상적 특징을 보여주고 칭찬이든 비판이든 그것을 적극적으로 수용하겠다는 목적을 앞세우고 있는 작업이다.

 

이번에 경기도립국악단이 무대에 올리는 작품은 교향곡 페르귄트 모음곡 전곡 연주이다. 베를린 콘체르트하우스 활동 중인 페렌츠가보가 지휘한다. 그동안 국악관현악단이 시험삼아 한 악장을 연주했거나, 서양의 소품들을 국악기 음역에 맞게 편곡하여 연주해온 전통을 고려한다면 이것은 하나의 사건이다. 이 작업이 가능하기 위해서는 한국 전통악기의 음역과 성량, 그리고 표현기교까지 철저하게 고려해야 하기 때문이다. 박제화된 전통을 지키는 작업의 한계를 명확하게 인식하고, 우리 음악의 세계시장에의 편입 가능성을 다소 이른감이 있게 모색하려는 목표가 분명하다.

 

이번 연주에 거는 기대는 정말 크다. 일단 페리귄트 모음곡 전곡을 연주한다는 것은 시도는 좋다. 그러나 우리 악기로 북유럽 특유의 우울과 열정을 풍성하게 그려내고 있는 페리귄트를 과연 제대로 그려낼 것인가에 관심이 집중된다. 우리 악기는 서양악기에 비하여 악기별 표준화의 수준이 아주 미약하다. 통일된 음색을 그려내려는 시도에서 우리 악기의 표준화가 얼마나 이루어져 있는지 귀를 열고 섬세하게 들어봐야할 것이다.

 

그런데 이번 연주에 대하여, 단순히 서양악기로 연주해왔던 페리귄트 모음곡을 한국악기로 변환시켜 연주했다는 평가에 그치면 안 될 것이다. 경기도립국악단에서 연주하는 페리귄트 모음곡은 우리 악기만이 그려낼 수 있는 미세한 시김새를 어떻게 장점화하여 차별적으로 드러내느냐 하는 것에 방점에 찍히게 된다. 그리그의 작품을 철저하게 분석하고 점검한 다음, 이 작품에 한국적 정서를 입히고 담아내어 경기도립의 페리귄트 모음곡으로 만들어내야 하는 작업이 있어야 한다.

 

경기도립국악단의 이번 연주는 신기원적(epoch making) 의미가 담겨있다. 이 도전은 실로 놀랍고 자신만만한 것이다. 이들의 도전은 기본적으로 시대를 관통하면서도 현대인의 감성에 다가가고자하는 의미를 바탕에 갖고 있다. 세계시장에 한국음악의 존재와 그 위상을 물어보는 전략도 함께 내세운다. 전인미담의 이 경지를 도전하는 경기도립국악단에 박수를 보낸다.

이번 공연의 의미는 앞으로 우리 국악관현악단의 향배에 대한 중요한 제안이 될 수 있다. 한국안에 갇혀서 우리의 한계를 인정하고 자족적 체계안에서 살 것인가, 어찌보면 너무 앞서간다는 평가를 들을 수도 있지만 세계 무대에 한국음악의 위상을 자리잡게 할 가능성을 제시할 것인가, 그 선택의 기로에 우리는 지금 서있다.

유영대 고려대학교 교수·한국고전문학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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