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체로 연말 가까운 시기에 등장하는 성인지 예산 관련 뉴스를 보면 유독 부정적인 말이 많습니다. ‘부실, 황당, 엉터리, 유명무실, 겉돈다’ 등의 단어가 등장합니다. 왜 성평등을 위한 필요비용에 부정적인 표현이 쏟아지는 것일까요? 성평등은 결코 부정하거나 소홀히 할 수 없는 글로벌 공공가치인데 말입니다.
그 답은 우리나라의 성인지 예산서 작성 방식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일반적으로 예산서는 정책이나 사업의 필요성과 비용을 산출근거와 함께 제시해서 예산을 배정받기 위해 작성합니다. 예산서를 의회에 제출하고 승인받으면 사업비용이 확보되는 것이지요. 예산은 보육예산, 국방예산처럼 특정 사업분야가 함께 결합됩니다. 예컨대 ‘2017년 경기도 복지예산은 사업수요가 많아서 전년도 보다 얼마가 늘어난 얼마를 배정했다’는 식이지요.
그런데 성인지 예산서는 성평등 사업을 추진하기 위한 필요비용을 요청하기 위해 작성하는 것이 아닙니다. 이게 무슨 소리일까요?
성평등 사업에서 ‘성평등’은 교육, 복지, 환경, 노동처럼 특정 사업분야를 의미하지 않습니다. 성평등은 이 모든 분야의 사업을 추진할 때 늘 고려하고 반영해야 하는 공공가치이므로 별도의 사업 분야로 분리하지 않습니다.
예를 들어 2017년도 교육부 예산에는 여성공학인재양성 예산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성평등 사업 예산이지만, 사업분야로는 교육예산입니다. 성인지 예산은 이처럼 여러 사업의 예산에 포함되어 있는 것입니다.
성인지 예산서는 여러 분야에 흩어진 성평등 사업들을 묶어서 성평등에 기여하는 사업규모가 어느 정도인지 알게 해줍니다. 이 때 성평등과 직접 관련 없어 보이는 사업도 일부 포함됩니다. 예컨대 수원역 환승센터 건립과 같은 사업은, 여성들의 대중교통 이용률이 높은 점을 고려하여 환승센터 설계에 여성의 요구가 잘 반영되는지 점검할 필요가 있다는 점에서 성평등과 간접적으로 관련되므로 성인지 예산에 포함됩니다.
물론 성평등에 기여하는 사업의 규모와 비중이 적거나 빈약하다면 성평등 사업 예산을 더 늘려야 한다는 문제제기를 할 수 있어야 합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우리나라 성인지 예산 제도는 그런 단계까지 발전하지 못한 상태입니다. 성인지 예산서가 부실하다는 지적을 받는 것은 예산요구를 목적으로 하지 않는 성인지 예산서의 성격과 관련이 있을 것입니다.
성인지 예산 제도를 시행하는 나라 중 예산서를 별도로 작성하지 않고 해당 사업의 성평등 관련성이나 성과목표를 쓰게 하는 나라도 있습니다. 제도 운영 방식의 차이라고 할 수 있지요. 따라서 제도의 미흡한 점을 부각시키기보다는 이를 꾸준히 보완해서 국가 성평등 제고라는 본래 목적에 부합하도록 만들 책임이 우리 자신에게 있다는 점을 잊지 말아야 하겠습니다.
손영숙 道가족여성연구원 성별영향분석평가센터장
로그인 후 이용해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