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구대 그림이 세계적으로 주목받는 점은 고래와 짐승들의 모습이 엑스레이(X-ray) 사진처럼 보인다는 것이다. 마치 뼈를 나타낸 것처럼 몸통에 금을 그어 나누어 놓은 것을 보고 다양한 해석이 있었다. 일부 학자들은 사냥이나 고기잡이에 기여한 몫에 따라 나누는 행위를 나타낸 것으로 해석하기도 한다. 몸통의 빗금크기가 다양하게 표현된 것으로 보아 이런 유추는 충분히 가능할 것으로 보인다.
최근 ‘성과공유제’에 대한 논의가 활발하다. 성과공유제란 대기업과 협력업체가 공동의 협력활동을 통하여 원가절감, 품질개선, 생산성 향상을 위해 노력하고, 그 결과로 나타난 협력의 성과를 현금 보상, 장기 계약 등 사전에 합의한 계약에 따라 나누는 제도이다. 반구대 그림에서 본 것처럼 기여한 몫에 따라 나누자는 취지로 도입되었다.
시장과 기술이 급변하고 이들을 구성하는 요소가 복잡해지면서 그 어떤 대기업도 시장과 기술의 변화를 모두 따라잡을 수 있는 역량을 갖추기 힘든 상황을 맞이하고 있다. 이에 따라 많은 기업은 글로벌 경쟁의 소용돌이 속에 경쟁력 강화를 위해 고군분투 중이다. 척박한 기업환경에서 자원을 어떻게 확보하고 이를 조정하고 통합하면서 역량을 극대화할 수 있느냐가 관건이다. 그중에서도 성과공유제는 새로운 시대에 맞는 개방형 혁신이라고 할 수 있다.
일찍이 일본 도요타 자동차가 이런 성과공유제를 활용한 개방형 혁신활동을 통해 세계적 기업이 되었고, 미주나 유럽의 존 디어, 롤스로이스, 크라이슬러 등의 기업들도 마찬가지다. 우리나라는 2004년 포스코가 생산성혁신을 위해 자발적으로 도입한 것이 시초이다. 최근 새로운 패러다임으로 부상한 ‘공유가치창출(Creating Shared Value)’의 실천모델로서 성과공유제가 갖는 의미와 당위성은 더욱 자명해진다.
글로벌 경쟁에 직면한 대기업들은 다른 기업들의 다양하면서도 독특한 노하우를 활용하지 않고는 세계 최고의 위치에 설 수 없게 되었고 이런 점에서 개방형 혁신은 필수요소가 되었다. 이에 따라 대기업들은 중소기업이 가지고 있는 지식을 자신의 그것과 결합하여 새로운 가치를 창출하고 있는 것이다. 혁신은 혼자서 할 일이 아니다.
하지만 이 제도가 2차, 3차 협력기업 등 많은 기업으로 확산되지 않는다는 우려에 따라 다양한 의견이 제시되고 있다. 일부에서 주장하는 ‘초과이익공유제’, 혹은 ‘협력이익배분제’ 등이 바로 그것이다. 최근 기업 간 양극화가 심화되는 과정에서 충분히 논의되어야 할 문제임은 분명하다. 하지만 이의 현실성과 구체성은 다소 빈약해 보인다.
이런 관점에서 본다면 성과공유제는 더욱 다양한 모델로 발전할 수 있을 것이다. 이익배분에만 초점을 둔 다른 제도와는 달리 협력기업의 납품에 대한 품질개선 및 원가절감 등을 할 수 있고 공정관리 혁신, 신제품 또는 신공법을 개발하고, 이에 따라 창출된 성과를 나눌 수도 있을 것이다.
고대 암각화는 인류의 지혜가 녹아 있는 교과서다. 반구대 암각화는 생산과정에 기여한 정도에 따라 성과를 배분하는 지혜를 가르쳐주고 있다. 물론 오늘날 생산과 분배, 소비과정은 고대와는 차이가 있겠지만 성과를 공유한다는 큰 틀에서 보면 비슷하다. 시대에 알맞은 성과공유제의 도입과 발전을 통해 기업의 경쟁력을 높이도록 해야 할 것이다.
이정화 대중소기업협력재단 본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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