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 칼럼] 지금은 트라우마 시대

이용성 사회부장 ylees@kyeongg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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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년전 경부고속도로를 타고 안성으로 향하던 길이었다. 앞서 달리던 차량이 갑자기 급정거하는 바람에 뒤따라오던 대형 트럭에 받혀 병원에 입원한 적이 있다. 찌그러진 차량이야 수리해서 고치면 되고, 몸이 다친 거야 치료를 통해 완치되는 거라 별문제는 없었다. 하지만 수년이 지난 지금까지 기자를 괴롭히는 것이 있다.

 

바로 하얀색 트럭이다. 사고 가해차량이 흰색 트럭인 탓에 도로를 달릴 때 비슷한 차량이 붙으면 나도 모르게 식은땀이 날 정도로 긴장된다. 도로 위에서 우왕좌왕하던 기자의 모습까지 겹치면서 영원 같은 순간을 종종 경험한다.

 

#친분이 있는 한 선배는 엘리베이터를 아예 타지 못한다. 수십 층의 고층 빌딩도 엘리베이터 대신 계단을 이용한다. 남들에게는 건강을 생각해 엘리베이터를 안 탄다고 해명하는 이 선배의 말 못할 사정은 이렇다. 기억이 가물가물한 어린 시절 부모에게 다락방에 갇혀 체벌을 당한 것이 주원인이라는 것이다. 언제부턴가 엘리베이터나 창문이 없는 방 등 막힌 공간에만 있으면 숨이 꽉 막혀 버리는 공포감이 생겨버렸다는 것이다.

 

트라우마는 일반적 의학용어로는 ‘외상’을 뜻한다. 심리학에서는 ‘정신적 외상’이나 ‘영구적인 정신 장애를 남기는 충격’을 말한다. 사고로 인한 외상이나 정신적인 충격 때문에 사고 당시와 비슷한 상황이 됐을 때 불안해지는 것이다. 선명한 시각적 이미지를 동반하는 일이 많고, 장기간 기억되는 것이 특징이다.

 

트라우마가 대한민국 전체를 뒤덮고 있다.

나라 안팎으로 충격적이고 괴이한 사건, 공포감을 조성하는 상황 등이 연이어 발생하면서 직간접적으로 정신적 외상을 호소하는 국민이 늘고 있는 상황이다. 북한은 핵실험과 미사일 발사를 병행, 한반도 긴장감을 한층 고조시키며 전쟁에 대한 공포감을 조성하고 있다. 이 때문에 굉음을 동반한 비행기 소리만 들어도 뉴스 속보를 뒤지는 사람이 많다고 한다. 

하루 이틀을 멀다 하고 동반자살, 백골상태로 발견된 딸, 낙동강변에서 주검으로 발견된 초등생 아들, 여섯 살배기 입양 딸을 죽여 유기한 엽기적 양부모 등. 연일 발생하는 끔찍한 사건들도 정신적 충격을 가하면서 매번 헤어나올 수 없는 답답함을 안기고 있다.

 

경주에서 발생한 규모 5.8의 지진은 트라우마 시대의 정점을 찍었다. 지난달 12일 발생 이후 현재까지 458회의 여진이 일어나면서 경주시민은 물론 한반도 전 국민이 불안에 떨고 있다. 많은 사람이 SNS를 통해 지진 발생시 꾸려야 할 짐 목록과 대처 방법 등을 공유하며 불안감을 드러낸다.

 

전문가들은 이 같은 트라우마에서 벗어나기 위한 방법으로 상처는 상처로 인정하고 받아들이기, 휴식운동 등 자신을 사랑하기, 친구와 가족 간 대화 등을 제안한다. 대중매체와 인터넷 사용 중단도 있다. 반복적으로 정신적 충격을 준 장면이나 관련 소식을 재생하면서 더 깊이 상처 속으로 빠져들지 말라는 것이다.

하지만 전기나 인터넷이 되지 않는 산속으로 들어가면 모를까. SNS 한 두 개쯤은 필수로 운영하고 원하지 않아도 각종 정보에 노출된 현대인에게 비현실적인 방법이라는 생각이 든다.

 

결국 가장 현실적인 트라우마 극복 방안은 ‘사람’에 있다. 깊어가는 가을, SNS로 소식을 전하는 대신 내 친구 혹은 내 가족과 마음속 깊은 이야기를 꺼내는 시간을 가져보는 것은 어떨까 싶다.

 

이용성 사회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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