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난히도 무덥던 여름도 지나고 아침, 저녁으로 제법 찬바람이 분다. 한편으로는 결실을 맺기에는 좋은 햇볕이었기에 그 인고의 시간을 지나 풍성한 수확을 우리에게 안겨주고 있다. 어김없이 계절은 바뀐다는 사실과 가을이 참으로 좋은 계절임을 새삼 느끼게 된다.
우리가 일상적으로 맞는 계절이지만 계절은 삶을 많이 닮았다. 마치 사계절이 삶의 희, 노, 애, 락 같기도 하고, 가는 계절을 잡을 수 없듯이 가는 세월을 막을 수 없는 것도 같다.
아무리 무더운 여름이라도 따사로운 가을에 길을 내준다는 진리는 힘든 시간을 이겨내면 좋은 시절이 온다는 것을 우리에게 보란 듯이 증명했다. 여름 다음에 바로 겨울이 아닌 이유로 우리가 추위에 적응할 수 있는 시간을 얻은 것처럼, 노년기 전에 장년기가 있음으로 인해 사색하고, 풍요한 삶을 사유할 수 있는 시간을 선물해 주고 있다.
특히 가을로 접어들면서 낮은 점점 짧아지고 밤이 길어진다. 겨울로 서서히 접어들고 있다는 자연의 신호다. 삶을 닮은 가을은 우리에게 많은 인생의 질문을 던지고 있다. 가을은 저무는 햇살이 서럽게 느껴질 때가 많다. 매일 뜨고 지는 해지만 감성이 샘솟게 만든다.
그리고 살아온 날과 살아갈 날들에 대한 생각의 시간으로 채운다. 숙고하지 않는 삶은 살 가치가 없다는 어느 철학자의 말처럼, 인생의 겨울이 오기 전에 이 가을은 우리에게 삶에 대한 질문을 던지고 있는지도 모른다.
곧 낙엽이 진다. 뜨겁던 여름을 기억으로 간직한 채 흔적을 떨어뜨린다. 낙엽은 욕망과 탐욕으로 붉게 타오르던 우리의 모습인지도 모른다. 일종의 꿈이고 사라질 신기루다. 낙엽이 떨어진 자리에는 잎에 대한 기억만이 매달려 있다.
우리도 욕망으로 가득한 삶의 이력서를 내려놓고 새롭게 시작할 준비를 해야 하는 시기다. 꽃을 버려야 열매를 맺듯이, 잎을 버려야 새로운 잎이 달린다. 치열하게 살아온 흔적을 내려놓을 필요가 있다. 그러다 겨울이 오면 무덥던 여름을 그리워하고, 짙푸른 잎이 그리울 때가 있을 것이다. 내려놓으려던 삶이 욕심을 그리워할지라도 다시 채워질 삶은 치유 가능한 삶이었으면 좋겠다.
한편 가을은 시(詩)와 많이 닮았다. 매년 느끼는 것이지만 가을은 참으로 짧게만 느껴진다. 비록 짧지만 많은 여운을 넘기고 사라진다. 시(詩)도 마찬가지로 짧지만 여운을 준다. 시간이 지날수록 깊어지는 가을의 정취처럼, 읽을수록 깊어만 가는 생각의 깊이를 시(詩)에서 느낀다. 단풍이 가을을 수놓듯이 우리는 말의 향연(饗宴)으로 수를 놓고, 사색의 한 마당을 펼친다. 짙어지는 단풍 색깔만큼이나 우리의 생각도 짙어진다. 누구나 마음속으로 시를 짓는다.
단풍은 영원히 붉게 물들어 있지 않다. 빛바랜 모습으로 매달려 있기도 하고, 땅 위에 뒹굴다가 밟히기도 한다. 바람과 비가 낙엽이 지는 것을 재촉하기도 한다. 우리 삶도 각종 시련이 삶을 위축시키고 삶의 무게로 우리를 누른다. 그러나 비워야 채우고, 버려야 더 많은 것을 얻을 수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안도현 시, ‘가을엽서’의 시구처럼 왜 낙엽이 낮은 곳으로 내려앉는지를 생각해 보는 가을이었으면 한다.
임창덕 경영지도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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