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과 종교] 불편한 날이 된 추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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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족의 명절, 추석이 지나갔다. 나에게는 어제와 다름없는 날들이었지만 올해도 고향으로 가는 사람들은 서둘러 길을 떠났을 것이다. 그들 중 어떤 이는 하루 종일 길 위에 있었거나 고향에 도착해서 분주하게 성묘를 하고 차례를 지냈거나 이런저런 이유로 아예 서울을 떠나지 않은 이도 있었을 것이다.

 

안타깝게도 추석은 수험생과 비혼자, 취준생에게는 너무 많은 관심 때문에 부담스럽고, 노인과 노숙자, 이주민에게는 너무 적은 관심 때문에 외로운 날이 되어버렸다. 세상의 모든 며느리와 어머니와 딸들에게 바쁘고 고단한 날이, 사위와 아버지와 아들들에게는 책임감으로 어깨를 짓누르는 날이 되어버렸다.

 

연휴가 끝나고 대중 매체에 하루도 빠짐없이 기사화되는 불화와 살해, 이혼 소식을 들으면서 어느새 명절이 사람들이 만나서 반가운 날이 아니라 오히려 만나서 귀찮고 불편해지는 날이 되어버린 것이 아닌지 의심스러웠다. 추석은 온갖 부정적인 것들이 덕지덕지 붙어 만신창이가 된, 쓸모없고 불편한 날이 된 것만 같았다.

 

그래서인지 올해는 친절하게도 ‘비혼자에게 결혼 여부를 묻지 말 것’, ‘취준생에게 취업 여부를 묻지 말 것’ 등등 명절에 해야 할 말보다 하지 말아야 할 말들에 대한 정보가 대중 매체와 SNS를 타고 돌아다녔다. 뿐만 아니라 차례음식을 마련하는 일 때문에 가족 간의 불화가 일어난다고 해서 애초에 그 소지를 만들지 않기 위해 차례문화를 폐지하자는 이야기도 공공연히 들려온다.

 

‘조상신’에게 제사를 지내는 일이 ‘미개한’ 풍습이라는 논리를 내세워서 말이다. 차례를 지내고말고는 개인의 선택사항일 수 있지만 ‘미개하다’고 말한다면 또 다른 이야기이다. 언뜻 합리적인 비판인 듯 보이지만 문화의 기저에 존재하는 상징체계의 위력을 이해하지 못하고 편의와 편리를 내세워 귀찮은 일을 하지 않겠다는 얄팍한 발상이다.

 

종교의례든 세시풍속이든 의례는 인간이 더 큰 질서 속의 일부임을 일깨움으로써 유한한 인간의 삶에 의미를 부여하는 상징적 장치이다. 언제부턴가 이런 것들을 우습게 여기는 풍토가 부끄럼 없이 횡행하고 있다. 그들 존재의 뿌리를 확인하고 일상의 삶을 살 수 있는 힘을 얻기에 명절이면 막힌 길에서 경적을 빵빵거리며 기를 쓰고 고향으로 돌아가려 했던 것이 아닌가! 서양에서도 추수감사절과 성탄절에 가족을 만나려고 귀성하는 인파 때문에 비행장이 북새통이 되고 비행기가 연착하는 일이 다반사이다.

 

추석은 차례음식 만드는 일이 전부가 아니다. 오래 떨어져 있었던 가족들이 마주 앉아 남성과 여성, 어른과 아이 구분 없이 송편을 빚고 달맞이 하고 집안 어른들에게 문안인사를 하며 서로 공유하는 기억을 되새기고 공유할 기억을 만드는 날이다. 서로에게 불편하고 부담스러웠던 관계가 차례상을 차리지 않고 관광지로 달려간다고 해서 달라지겠는가? 여성들에게 의무와 강제를 상징하는 날이 되어버렸지만, 그것을 피하겠다고 놀이동산과 백화점을 기웃거리고 있지 않은지 성찰해봐야 한다.

각자도생하는 이 팍팍한 현실 속에서도 다시 일상을 시작할 힘과 용기를, 늘 가까이 있지만 소홀했던 사람들을 배려하는 넉넉함을, 그리고 고향으로 돌아갈 수 없는 외로운 사람들을 기억하고 작은 정성이나마 보태는 날이 되기를, 그래서 “더도 덜도 말고 한가위만 같은 날”이기를 기원해본다.

 

명법 스님 은유와마음연구소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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