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격적인 추수를 앞두고 농민들의 시름이 깊어지고 있다. 특히 쌀 농가들은 해마다 떨어지는 쌀값에 가슴에 멍이 들었다고 하소연한다. 경기농협 등에 따르면 올 추석 이전에 생산돼 지역 농협 미곡종합처리장(RPC)에서 수매한 조생종 벼(40㎏) 1포대 가격이 지난해보다 3천~4천 원가량 떨어졌다.
산지에서 여주 조생종 벼(40㎏) 수매가는 지난해 7만3천 원 하던 것이 올해 7만 원으로 3천 원 하락했고, 이천 RPC 역시 지난해보다 가격이 3천 원 내려간 6만7천 원에 수매했다. 시중에 판매되는 경기미 전체 평균가(20㎏)도 지난해 4만7천~8천 원 선보다 5천 원가량 내려갔다.
앞으로가 더 걱정이다. 가을볕이 좋은 데다 태풍도 비켜가면서 대풍(大豊)을 예고하고 있다. 농림축산식품부는 올해 쌀 생산량이 평년보다 3.5% 많은 418만4천t에 달할 것이란 전망을 내놨다. 이달 말부터 본격적으로 수확되는 만생종 벼가 나오면 쌀 가격은 더 내려갈 게 뻔하다.
햅쌀은 그렇다 치고 남아도는 쌀이 더 걱정이다. 지난 5월 말 기준 경기도를 포함한 전국 쌀 재고량은 175만t에 달한다. 지난해 같은 시기 143만t보다도 많아졌다. 경기도내 21개 미곡처리장 창고에만 2만1천700t의 쌀이 재고로 남아 있다.
생산은 느는데 소비가 줄어드니 당연한 결과다. 지난 1985년 국민 1인당 연간 쌀 소비량은 128.1㎏이었는데, 2015년에는 62.9㎏으로 30년 만에 반 토막이 났다. 대신 밀가루는 통계가 잡힌 2012년을 기준으로 1인당 연간 소비량이 35kg으로 쌀의 절반을 넘어섰다. 국민의 식생활이 밀가루 의존으로 바뀌고 있는 것이다.
정부는 지난해 12월, 벼 대신 콩 등 타 작물 재배와 농지제도 개편, 직불제 개선 방안, 고품질 쌀 생산촉진, 사료용 벼 재배, 쌀 가공산업 활성화 등을 포함한 ‘중장기 쌀 수급 안정대책’을 마련했다. 하지만 올해 수확기를 앞두고 쌀값 폭락을 막지 못하고 있다.
정부와 청와대, 새누리당이 지난 21일 고위 당정청 회의에서 ‘절대농지’로 묶여 있던 농업진흥지역의 해제 등을 통해 벼 재배면적을 줄여 쌀 공급과잉에 따른 대책을 세우겠다고 발표했지만, 우려의 목소리가 크다. 쌀이 남아도는 것은 일시적 현상이지만 쌀 재배면적을 줄이는 것은 영구적이어서 자칫 식량안보를 위협받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가장 좋은 방법은 쌀 소비를 늘리는 거다. 그렇다고 국민을 향해 쌀 소비를 늘려달라고 애원할 수도 없다. 이미 입맛이 달라진 세대에게 밥 많이 먹으라고 호소한다고 식생활이 바뀔 리 없다. 밥보다 과자나 빵, 특히 피자나 햄버거, 파스타 등을 선호하는 신세대가 좋아할 만한 음식을 쌀을 이용해 개발하고 소비가 촉진될 수 있도록 지원해야만 한다. 대세 프로그램인 ‘쿡방’, ‘먹방’도 적극적으로 활용해야 한다.
쌀을 이용한 음식이나 가공품을 자꾸만 보여주고 먹고 싶게 만들어야 소비가 이뤄진다. 경기농협 여성복지실처럼 기특한 생각을 한 기업이나 개인을 포상하는 것도 방법이다. 농민들이 자식처럼 가꾼 논을 갈아엎는 모습을 매년 되풀이해서 볼 수는 없기 때문이다.
박정임 경제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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