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년 8월29일, 한국 땅에 첫 발을 내디디며 숨을 들이마시는 순간 저의 영혼은 통째로 소용돌이에 휩싸이는 듯 감개가 무량했습니다. 그 여운이 가시기도 전에 저는 꿈에도 그리던 여동생을 만났습니다.
저는 한국말을 할 줄 모르지만 피는 물보다 진하다고… 만남과 동시에 제 동생의 눈빛, 저를 만져보고 안아보는 행동 하나하나에 스며있는 가족 간의 끈끈한 정을 직감적으로 느낄 수 있었습니다. 제게 마음을 열어주고 많은 선물까지 준비한 동생은 북한에 남아있는 남매를 생각하며 열심히 살고 있었습니다.
방문 첫날, 조상이신 남이 장군 묘비 앞에서 눈을 감고 고개를 숙인 채 상념에 잠겨있는 동안 남모를 자부심에 가슴이 뿌듯해짐을 느꼈습니다. 저는 그곳에서 정성스럽게 흙을 한 줌 집어 들었습니다. 불가리아로 돌아가서도 이 흙을 보면서 남이 장군에 대한 기억들을 간직하고 싶었기 때문입니다.
이전까지 제가 알고 있던 한국은 질서 있고, 단기간 번영과 발전을 이룩한 국가라는 것이 전부였지만 이제는 숭고한 조상에 대한 기억이 살아있는 곳이 되었고, 국민 한 사람 한 사람을 소중히 여기는 나라로 마음에 새길 수 있었습니다. 한국인 아버지와 불가리아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난 제가 북한에서 태어난 제 이복여동생을 이곳 한국에서 만난 것이 이를 반증한다 할 것입니다.
DMZ를 방문했을 때 눈물 어린 눈으로 분단의 다리에서 멀리 북녘을 바라보며 기도하던 사람들의 표정을 지금도 잊을 수 없습니다. 그때 강제된 분단은 개인적으로나 국가적으로 크나큰 비극이라는 점을 뼈저리게 느꼈습니다.
이곳에서 행방불명된 아버지를 위해 제사를 드리며 감정이 북받쳐 오르는 것을 참을 수 없었습니다. 나무다리 위에 말없이 서 있을 때 제 여동생의 애절한 외침을 들었습니다. “아버지, 저희들을 보고 계시나요. 이렇게 저희들이 같이 있어요.
아버지를 기다리고 있어요!” 이에 저도 모르게 이렇게 외쳤습니다. “아버지, 우리가 드디어 만났습니다, 거리가 아무리 멀다고 해도 이제 다시는 저희를 갈라놓지 못 할 겁니다.” 그 순간 제 아내는 옆에서 조용히 연신 눈물을 훔쳐내고 있었습니다. 장군의 후예가 왔다고 직접 맞이하여 주신 이종화 1사단장님은 마치 오래된 친구 같은 느낌으로 남아있습니다.
방문 둘째 날 저는 경기포럼에서 불가리아 소개와 냉전과 분단의 아픔을 간직한 인생여정에 대해 강연하는 영광스러운 자리를 갖게 되었고 특별히 남경필 도지사님 초청 오찬을 통해 주한 불가리아 Andonov 대사도 만날 수 있게 되어 정말 뜻깊었습니다.
“과거를 존중하지 않으면 결코 미래는 없다”라는 공자의 말씀처럼 국보들을 소장하고 수준급으로 관리하고 있는 한국의 박물관들을 보면서 발전된 한국의 저력을 엿볼 수 있었습니다.
또한 한국의 판교테크노밸리에서 혁신과 경쟁력을 갖춘 글로벌 기업들의 발전을 보며 한국의 미래 성장가능성을 느꼈으며 뿌리를 찾아 방문한 남씨 대종회에서는 지난 500년에 걸친 가문의 역사를 한 눈에 볼 수 있는 기회를 가질 수 있었고 특별히 저를 남씨 일가의 일원으로 인정하고 받아 주심에 감사했습니다.
이 글을 마치면서, 분단으로 말미암아 평생을 헤어져 살아야 했던 이름 없는 작은 가족의 재결합을 위해 자신의 일처럼 같이 아파하고 애써 준 남경필 지사님을 비롯한 경기도와, 불가리아의 관계자 여러분께 거듭 진심으로 감사의 마음을 표하고자 합니다.
카멘 남 불가리아 소피아국립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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