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문제가 있었을까? 개헌 논의는 대개 현행 헌법이 시대의 변화를 반영하고 있지 못하다는 지적에서 출발한다. 사실 87년 개헌은 여야 합의였다지만, 국민의 다양한 헌법적 요청을 수용하지 않았다. 정치 엘리트의 협소한 협약이었다. 대통령 직선제로 단순화하면서, 그 이면에 담긴 많은 사람들의 분노와 얘기를 담지 않았다. 독재가 남긴 문제는 무엇이고, 어떻게 과거를 청산할 것이며, 어떤 사람들에게 책임을 물을 것인지, 민주화의 최소필요조건조차 채우지 못했다.
국민에게 어떤 권력과 권리를 보장할 것인지 제도 보장도 없었다. 헌법 문장은 바뀌었지만, 관련 법률 제ㆍ개정은 정치권력자의 몫이었다. 개헌 국면에서의 주권자 권력은 헌법을 개정한 이후 국회 또는 정부의 손으로 넘어갔다. 독재에 영합했던 이들 중 법적ㆍ정치적 책임을 지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그것은 국가폭력에 대한 침묵이자 면죄부였다.
지금은 다른가? 국회의원들은 국민을 등에 업고 대통령 권한을 일부 뺏을 요량이다. 대통령 또는 유력한 대권주자는 어쩔 수 없는 상황에 몰리지 않는 이상 대통령 권한을 약화시킬 까닭이 없다. 시민사회에서는 인권과 민주주의를 실현할 수 있도록 헌법전을 고치려 하지만, ‘국민들의 힘’을 모으기가 쉽지 않다. 국민들의 헌법적 지향점이 다를 수밖에 없기 때문에 어떻게 정치적으로 타협할 것인가는 기나긴 여정을 겪어야 하는 일이다. 국민에게 권력을 되돌려주지 않았던 현행 헌법이 다시 발목을 잡는다.
어떤 방향이어야 할까? 기본권 강화 및 지방분권이 중요하다. 다만, 법률로 정하기만 기본권을 제한할 수 있다는 국회의원ㆍ정부공무원ㆍ법관ㆍ재판관들의 권위주의적 헌법의식을 교정해야 한다. 기본권 강화는 입법ㆍ행정ㆍ사법의 권력이 서로 견제하면서 균형을 이루게 하는 권력구조 개편을 수반해야 한다. 지방분권 또한 다르지 않다.
지방정부에게 권력을 주자는 것이 아니라 국민들이 중앙정부를 견제할 수 있도록 하는 또 하나의 방도일 뿐이다. 민주권력의 회복이자 보장이다. 기본권을 강화하기 위한 일차적 과제다. 대통령(국가정보원, 검찰, 경찰 등 포함), 국회, 사법부 순으로 권력에 비례해서 민주적·법적 책임추궁 및 통제방안이 있어야 한다. 헌법에는 원칙을 담고, 그것을 이행할 수 있는 내용을 관련 법률에 동시에 담아야 한다.
그 다음에 무엇이 중할까? 이차적 과제는 민주시민의 균등한 권리를 서로 보장하는 것이다. 한 사람 한 사람이 모두 존엄한 사람임을 무조건 인정해야 한다. 그것을 보장하는 책임 또한 제도화해야 한다. 일체의 차별을 금지하고 차별을 해소하기 위한 적극적인 정책을 시행할 수 있는 법률을 제정하는 것에서 시작해야 한다. 그리고 정치적 이견이 존재하는 경우 어떻게 평화적으로 문제를 해결할 것인지 다양한 방법과 절차를 정해야 한다.
가능할까? 모든 일에는 순서가 있기 마련이지만, 절대 잊어서 안 되는 것은 어떻게 권력이라는 생선 앞에서도 의연한 고양이로 권력자를 훈육할 것인가의 문제다. 온갖 범법을 저질러도 장관을 비롯한 고위공무원이 되는 데 지장이 없는 사회에서, 많은 사람들의 생존권을 짓밟는 경제범죄를 저질러도 돈으로 액땜하고 사면 받을 수 있는 사회에서, 국가기관이 특정 권력의 창출 또는 유지에 충성을 해도 ‘셀프 개혁’ 시늉으로 면책 받는 사회에서.
오동석 아주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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