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생각 없이 한 말이 내 아들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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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ㆍ25전쟁이 치열할 때, 미국 LA 근교에 한 부인이 살고 있었다. 어느 늦은 밤, 부인이 막 잠자리에 들려고 하는데 전화벨이 울렸다.

 

“엄마, 저 존이에요. 잘 계셨어요?”

“그래, 너 지금 어디야?”

“방금 LA 공항에 내렸어요.”

“몸은 건강하고?”

“예, 건강해요.”

“빨리 집으로 오지 않고 뭘 하고 있어?”

“친구들과 같이 있어요. 내일 아침에 갈게요.”

“그래, 빨리 와라!”

“예. 그런데 부탁이 있어요. 전쟁터에서 만난 친구가 있는데, 전투 중에 지뢰를 밟아서 한쪽 다리와 한쪽 팔과 한쪽 눈을 잃었어요.”

“참 안 됐구나.”

“엄마, 나 그 친구와 같이 살면 안 돼요?”

“무슨 소리를 하는 거야? 네가 전쟁터에 갔다 오더니 감상적인 사람이 되었구나. 생각해 봐. 팔다리가 없으면 화장실은 어떻게 가고 샤워는 어떻게 하겠니? 그럼 사람이 집에 있으면 얼마나 불편한지 몰라. 난 그런 사람과 함께 못 살아.”

“엄마….”

“안 된다고 했잖아.”

“알았어요, 엄마.”

전화를 끊고 엄마는 정말 기뻤다. ‘내 아들 존이 돌아왔구나!’ 잠이 오지 않아 부엌으로 가서 아들이 좋아하는 요리를 했다. 날이 밝아왔지만 피곤하지 않았다.

그런데 9시가 되고, 10시가 되어도 아들이 오지 않았다. ‘얘는 오지 않고 뭐 하는 거야?’ 연신 밖을 내다보았다. 12시가 지나고 1시가 지나 전화가 걸려왔다.

“존의 어머니입니까?”

“그런데요. 누구신지요?”

“경찰입니다. 존이 호텔에서 투신해 죽었습니다. 빨리 병원으로 오십시오.”

 

엄마는 믿어지지 않았다. 전쟁터에서 살아 돌아온 아들이 미국에 와서 죽다니…. 거짓말 같았다. 병원으로 달려갔다. 경찰관을 따라 긴 복도를 지나 한 병실로 들어서니, 가운데 놓인 침대에 사람이 누워 있고 하얀 시트에 덮여 있었다. 

경찰관이 조심스럽게 시트를 젖히자 엄마가 깜짝 놀랐다. 틀림없이 사랑하는 아들 존이었다. 그런데 한쪽 눈이 없었다.

시트를 계속 젖히자 아들의 모습이 드러나는데, 한쪽 팔이 없고 한쪽 다리가 없었다. 엄마는 아들의 시체를 끌어안고 오열했다.

 

존은 미군에 입대해 일본 오키나와에서 근무하던 중 6·25전쟁이 일어나 한국전선에 투입되었고, 동부전선에서 지뢰를 밟았다. 얼마 후 정신을 차려 보니 자신이 병원에 누워 있었다. ‘내가 지뢰를 밟았는데 다행히 살았구나’ 하고 일어나려는데, 한쪽 다리가 없었다. 한쪽 팔도, 한쪽 눈도 없었다. 존은 오키나와로 후송돼 6개월 동안 치료받고 LA로 가는 비행기에 올랐다.

 

존은 생각에 잠겼다. ‘내가 병신이 되어 돌아가는구나. 이런 나를 누가 반길까?’ 아무도 자기를 좋아하지 않을 것 같았다. 마지막으로 ‘엄마는 나를 반겨줄까?’ 생각했다. 엄마의 마음을 확인해 보려고 전화를 걸어 자기 상태를 친구가 그렇다고 돌려 이야기했는데, 엄마의 목소리가 아주 차가웠다.

 

엄마는 존이 말하는 사람이 아들이라고는 생각도 못 했고, 존은 엄마의 참 마음을 알지 못했다. 그것이 무엇보다 귀한, 지뢰도 빼앗지 못한 존의 생명을 앗아갔다. 아들의 죽음 앞에서 엄마는 울음을 멈출 수 없었다.

 

우리가 조금만 더 깊이 생각하고 조금만 더 상대의 마음을 이해한다면 불행은 그만큼 우리에게서 멀어질 것이다.

 

박옥수 국제청소년연합 설립자·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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