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과 종교] 삶은 변한다

오늘도 더위를 피해 아침 일찍 도서관으로 발걸음을 옮긴다. 도저히 견딜 수가 없다. 벌써 보름 가까이 열대야 때문에 밤잠을 설친다. 당분간 학교 밑 연구실에서 지내야 하는데, 좁은 연구실은 뜨거운 열기에 숨을 쉴 수가 없다. 밤에도 그렇거니와 낮이야 말해 무엇하랴.

그래서 날이 밝으면 에어컨이 나오는 도서관으로 출근도장을 찍는다. 입추가 지나면 밤잠이라도 잘 수 있으리라 기대했건만, 이제 절기도 소용없게 돼버린 건지 낮의 열기가 밤이 되어도 좀처럼 가라앉질 않는다. 게다가 매미들은 밤낮없이 시끄럽게 울어댄다. 

밤에도 불빛 환하니 낮인줄 착각해서 그런다고 한다. 지구온난화는 가히 환경의 역습이라 할만하다. 사정이 이러하니 여름에도 밤이 추웠던 명봉사가 생각난다. 당장이라도 짐을 싸서 내려가고 싶은 생각이 굴뚝같다.

 

명봉사의 여름은 극락이다. 몇 해 전 복잡한 도시살이에 지친 나는 모든 것을 접어두고 도반이 있는 예천 명봉사로 내려갔다. 주지인 도반에게 ‘휴식이 필요하니 아무것도 시키지 말라’는 엄포와 함께 행장을 풀었다. 읽고 싶었던 책들도 양껏 챙겨갔다. 도반은 내가 머무는 몇 달 동안 정말로 아무것도 시키지 않았다.

 

그날부터 먹고, 자고, 여유 있게 차도 마셨다. 나무 그늘 아래 풀밭에 앉아 한가하게 책도 읽었다. 고개를 들어 하늘을 보면 그야말로 파란 하늘에 뭉게구름이 둥실 떠 있었다. 그저 자연에 감탄할 뿐이었다. 전에 없던 호사를 맘껏 누렸다.

 

명봉사를 끼고 흐르는 시내에 발도 담갔다. 발이 시릴 정도로 시원했다. 밤에는 계곡에서 불어오는 바람이 너무 차서 보일러를 켜야 할 정도였다. 비가 오는 날이면 창문 너머 처마에서 떨어지는 비를 감상하는 맛도 그만이었다. 쏟아지는 빗줄기가 어찌나 시원한지 영상을 찍어 가까운 이들에게 보냈다. 법당 맞은편 누각에서 계곡을 바라보는 것도 아주 운치가 있었다. 그야말로 극락이 따로 없었다.

 

명봉사는 예천에서도 아주 골짜기에 위치해 있어 인적이 드문데다 농사철이라 법회 날 이외에는 방문객도 거의 없다. 인파의 홍수 속에 피곤했던 나는 무엇보다도 이런 한가로움이 주는 기쁨이 너무 좋았다.

 

숲속으로 난 길을 따라 걸으며 조용히 명상하는 즐거움도 그만이었다. 도시 생활 십여 년이 되어도 아직 소음이 적응이 안 되는 나로서는 산새소리, 물소리, 바람소리가 천상의 음악처럼 들렸다. 절을 지키는 청삽살이 남순이와의 산책은 또 다른 즐거움이었다. 

녀석은 겁이 많아 곁을 멀리 떠나지 않는다. 순해서 데리고 산책하기가 좋았다. 참 편안하고 즐거운 시간들이었다. 그렇게 여름이 가고 가을이 왔다. 인생에서 또 있을까 싶은 시간들이었다.

 

이렇듯 살면서 즐거운 시간을 보낼 때면 이런 것들이 곧 행복인 것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지금의 상황이 이전보다 더 나아졌다고 생각하면 우리는 행복하다고 느낀다. 인간은 이 ‘느낌’으로써 행복을 경험한다. 

그러나 이런 행복이 슬프게도 오래 머물러 주지는 않는다. 명봉사에서의 행복도 겨울이 오면서 막을 내렸다. 그 좋던 시원함이 추위로 바뀌면서 감당할 수 없게 돼버린 것이다. 추위에 약한 나는 가난한 절 살림에 난방비를 많이 쓸 수가 없어 다시 수원으로 올라와야 했다.

 

언제나 그렇듯 삶은 늘 변화한다. 견딜 수 없는 이 더위도 언젠가는 시간의 흐름 속에 속절없이 물러날 것이다. 즐거움이 영원하지 않은 것은 분명 괴로움이지만, 한편으로는 삶에 변화라는 속성 있어 우리의 삶은 희망적이다.

 

이제 처서가 얼마 남지 않았다. 가는 세월은 야속하지만, 어찌할 수 없는 더위에서 벗어나고픈 마음은 떠나간 님 그리듯 귀뚜라미 등에 업혀 올가을을 기다린다.

 

도문 아리담문화원 지도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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