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천년, 새로운 천년을 연다] 경기 천년, 어떻게 준비해야 하나

‘道 탄생 600년’ 반면교사… 도민 공감 ‘새천년의 꿈’ 펼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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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파주 임진각 평화누리 천지진동 페스티벌 공연. 경기일보 DB
경기도는 오는 2018년 ‘경기 천년’을 맞아 기념사업을 추진하기 위해 지난 7월 중순부터 경기문화재단 등과 함께 경기 천년 준비 T/F를 구성하고 본격적으로 준비작업에 돌입했다. 

이 T/F에는 경기학회 등 외부 전문가 그룹도 함께하고 있으며 이들은 현재까지 천년 기념행사를 어떤 방향을 갖고 준비해야 하는지 논의 중이다. 이제 막 경기 천년에 대한 논의를 시작한 것으로 아직은 ‘백지상태’라고 볼 수 있다.

경기 천년까지 약 1년5개월가량의 시간이 남은 가운데 전문가들은 지난 ‘경기도 탄생 600년’ 기념식의 실패를 본보기로 삼아 경기 천년 기념식은 도민들이 공감할 수 있고, 도민들의 실제 삶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새로운 천년을 제시하는 사업들로 구성돼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 불과 2년 전에 개최된 ‘경기도 탄생 600년’ 기념행사, 왜 실패했나.

대부분의 경기도민이 기억하지 못하겠지만 경기도는 2년 전인 지난 2014년 2월 ‘경기도 탄생 600년’ 기념행사를 개최한 바 있다. 

불과 2년 전 600년이라고 외치던 경기도가 갑자기 천년을 외치게 된 것은 ‘경기 천년’은 고려 현종 9년인 1018년 수도의 외곽지역을 정식으로 ‘경기’라고 부르기 시작한 것을 기준으로 삼고 있고, 지난 2014년 개최된 ‘경기도 탄생 600년’은 조선 초기인 1414년(태종 14년) 관제가 바뀌면서 경기좌우도가 경기로 불리기 시작한 것을 기준으로 삼고 있기 때문이다. 

당시 도는 경기도 탄생 600년을 맞이해 2014년을 ‘통일 한국의 중심 경기도 600년’으로 선언한다며 다양한 기념사업을 추진했다.

 

도는 1414년 경기좌우도가 경기로 통합됐듯이 남북으로 분단된 우리 국토가 통일되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통일 한국의 중심 경기도 600년’을 선언하게 됐다고 설명했다. 

도는 경기도 600년 기념사업으로 중대한 일을 치른 뒤에 그 내용을 적어서 사당이나 신에게 고하는 ‘고유제’를 수원 화성행궁에서 개최, 경기도가 600년이 됐음을 공식적으로 알렸으며 ‘통일 한국의 중심 경기도 600년 과거·현재·미래’를 주제로 학술대회도 개최했다. 

또 경기도 600주년을 기념하는 책자 1만 부를 제작해 도민들에게 배부하고 경기도의 탄생과 주요 역사적 인물, 경기도의 위상과 역할ㆍ미래비전 등을 상세히 담은 책자도 제작해 배부했다.

 

그러나 2년이 지난 현재, 경기도 탄생 600년 기념사업을 기억하는 경기도민들은 많지 않다. 특히 경기도 탄생 600년 기념사업이 무엇을 남겼는지, 그 유산은 현재 어디에도 찾아볼 수 없다. 전문가들은 경기도 탄생 600년 기념사업을 실패하고 규정하며 그 이유에 대해 ‘너무 짧은 준비기간’ㆍ‘보여주기식 일회용 행사’ 등을 꼽고 있다.

 

강진갑 경기학회 회장은 “2014년 경기도가 개최한 경기도 탄생 600주년 기념사업은 실패한 사업이다. 절대 되풀이 해선 안 된다”며 “경기도 탄생 600주년 기념사업은 불과 2개월가량 밖에 준비기간이 없었다. 

그 사업이 남긴 교훈은 짧은 기간 준비한 이벤트로는 도민을 하나로 묶어 낼 수도, 새로운 미래를 제시할 수도 없다는 것이다. 남긴 것이 없으니 평가작업도 이뤄지지 않았다”고 꼬집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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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경기도 600주년 기념 학술심포지엄
■ 국내외 역사기념일은 어떻게 치러졌나.

그렇다면 경기도 이외의 지역에서는 역사 기념일을 맞아 어떤 행사를 준비하고 개최했을까. 

지난해 11월 경기학회와 경기문화재단 등이 개최한 ‘2015 경기 천년 학술대회 - 경기 천년, 새로운 천년을 향하여’에서 이지훈 경기문화재단 책임연구원이 발표한 ‘국내외 역사기념일 기념사업 추진사례 연구’를 보면 자세히 알 수 있다.

 

먼저 전문가들은 경기도 탄생 600년 행사와 달리 비교적 성공적이었다는 평가를 받는 ‘서울 정도 600년 기념사업’을 살펴보자.

 

지난 1994년 서울시는 조선 건국 후 1394년 도읍을 개경에서 한양으로 옮긴 것을 기념하기 위해 ‘서울 정도 600년 사업’을 추진했다. 서울시는 행사의 기본방향으로 △도시발전을 위한 실질적 효과 추구 △종합적 접근으로 사업의 총체적 효과도모 △뿌리의식을 지키면서 미래지향성 추구 △시정자세와 시민정신의 쇄신계기화 등으로 정했다. 

또 서울 600년 사업은 ‘서울, 새로운 탄생’을 목표로 4가지의 주제를 선정했는데 첫 번째 주제는 역사도시로의 새로운 탄생인 ‘다시 보는 서울’이다. 서울의 전통문화를 재현하고 계승ㆍ발전시키기 위해 ‘서울의 옛모습 모형 제작’, ‘서울학 연구발전’ 등을 추진했다. 

두 번째 주제는 인간 도시로의 새로운 탄생인 ‘새로 나는 서울’이다. 거대도시 서울을 활기찬 생활의 터전으로 조성시키기 위해 ‘남산골 제모습 가꾸기’, ‘한강공원 가꾸기’ 등을 추진했다. 세 번째 주제는 문화도시로의 새로운 탄생인 ‘신명나는 서울’이다. 서울의 문화적 풍요를 다 함께 누리기 위해 ‘서울, 새로운 탄생전’, ‘시민의 날 제정’, ‘시립박물관(서울역사박물관) 건립’ 등을 추진했다. 네 번째 주제는 세계도시로의 새로운 탄생인 ‘열려 있는 서울’이다. 

세계의 주역도시로 새롭게 태어나기 위한 국제화ㆍ미래화 사업으로 ‘서울 1,000년 타임캡슐 매설’을 추진하기도 했다. 서울시는 1994년에만 4개 분야 총 228개 사업을 본격화했는데 시민 모두가 동참할 수 있도록 서울의 전 지역을 무대로 진행하고 민간의 참여를 적극적으로 유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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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014년 10월부터 2015년 2월까지 서울역사박물관에서는 ‘응답하라 1994, 그 후 20년’이라는 서울 600년 회고전이 개최됐다. 이제 서울 600년 기념행사 자체가 역사가 된 것이다. 서울시는 이 회고전에서 서울 600년 행사가 서울시민의 역사적 자긍심을 높이는 계기를 마련했다는 데에 의미가 있다는 자평했다.

이지훈 책임연구원은 이러한 ‘서울 정도 600년 기념사업’에 대해 “충분한 준비기간과 절차 아래 진행됐고 사실상 국가 행사로 치러졌다”며 “지방자치제 부활 이후 각 지역에서 이러한 기념사업들이 많이 늘어났지만 한편으로 자치단체장의 임기에 얽매여 충분한 준비를 거치지 못하는 경우가 많았다. 

그러나 서울은 본격적인 지방자치 실시 이전의 사업이었기 때문에 이러한 한계로부터 자유로웠다”고 성공 이유를 분석했다.

 

캐나다에서 가장 오래된 도시이자 성곽도시인 퀘벡시는 400여 년 전인 1608년 7월 3일 정착촌이 들어선 것이 그 시초다. 퀘벡시는 5억 달러를 투자해 2008년 7월부터 10월까지 콘서트와 공연을 비롯한 다양한 행사를 진행했다.

 

400주년 행사의 하이라이트 중의 하나는 캐나다가 자랑하는 퀘벡 출신의 연출가 로베르 르파주가 만들어 낸 예술영상쇼 이미지밀(The Image Mill)이었다. 이 프로젝트는 퀘벡항의 곡물저장창고 벽에 가로 600m, 세로 30m의 초대형 영상을 만들어내는 것으로 매일 밤 진행됐다. 이 영상쇼는 퀘벡의 400년 역사를 △해로를 통한 탐험과 발견의 시대 △육로의 개발과 땅의 개발 시대 △항로여행과 통신의 발전시대 등 100년씩의 4개 파트로 나눠 감각적인 이미지를 보여줬다.

 

퀘벡시 400주년 행사는 캐나다 안의 프랑스 문화를 간직하고 있는 퀘벡의 뿌리와 전통을 전 세계에 알리고자 했으며 퀘벡시와 퀘벡주민들의 강한 유대의식을 확인하는 계기가 됐다고 평가받는다. 베트남의 수도 하노이는 지난 2010년 정도 1000년을 맞아 ‘전쟁의 상흔을 씻고 세계 속의 문화 수도’로 거듭나기 위해 대대적인 기념행사를 벌였다.

 

사업의 목표는 △베트남인으로서 함께 역사와 문화를 공유하고 있다는 사실을 확인하고 △사회주의적 교육, 전통문화, 경제 등의 사회발전을 도모해 부강한 수도 및 국가를 건설하는 계기로 삼으며 △‘수도 하노이’의 역사 문화를 베트남인들과 공유하고 베트남을 전 세계에 널리 알리고자 하는 것이었다.

 

기념행사는 2010년 10월1일 개막식을 시작으로 10월10일까지 공연, 전시, 학술, 스포츠 등 다양한 분야에서 대대적으로 진행됐다. 하노이와 연결된 도로들과 중심가에 판넬, 그림, 전자게시판 등을 통한 홍보활동과 함께 각 예술 분야에서 ‘탕롱-하노이 천년의 문화’를 주제로 작품활동을 펼치고, ‘문명화되고-친환경적이며-청결한 수도’ 캠페인을 통해 새로운 하노이 시민상을 만들어나가며, 2010년 말까지 각종 도시 인프라 건설사업과 동시에 1000년 삶을 기리는 각종 ‘영웅’들의 기념물 설치작업 등을 펼쳤다.

 

이지훈 책임연구원은 “국내외 사례를 보면 역사기념일은 몇 가지 공통점을 갖고 있다. 지역의 역사성을 강조하고 대외보다는 대내적인 목표를 우선시하는 것이다. 또 미래의 발전도 기약한다”라며 “그러나 기념행사를 개최만 할 뿐 결과물에 대한 평가는 제대로 이뤄지지 않고 있다. 대부분 분산적이고 일회성 이벤트에 의존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고 지적했다. 

이어 “이러한 문제점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지역의 역사적 근원과 시대 흐름이 잘 연구되고 지역민들에게 공유되고 있는지, 지역의 현실 과제들을 인식하고 이를 해결하거나 완화해 나갈 방안들을 모색하고 있는지, 역사기념일 사업의 명확한 목표를 세우고 이를 공동체 성원과 소통해 나갈 수 있는지 등이 충분히 고려돼야 한다”고 조언했다. 

이호준기자 

※ 이 취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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