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경제 ‘개방의 시대’ 저물고 ‘빗장의 시대’
막내린 신자유주의… 대한민국號 어디로
과거 대영제국의 부귀영화를 그리워한 영국이 43년만에 EU와 결별하고 독자노선을 걷게 되면서 세계사에는 한 획을 긋는 사건이 발생했다.
영국은 당초 세계화와 신자유주의를 주창하던 선구자였다.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40여년이 흐른 지금, 자국을 위해서 스스로 고립하겠다는 길을 택했다.
하나의 유럽을 지향하던 EU와 국경없는 세상을 꿈꾸던 전 세계는 혼돈에 빠지며 국제 질서는 일대 전환기를 맞고 있다. 영국을 시발점으로 신고립주의가 세계를 뒤덮고 있다.
■ ‘철의 여인’ 등장… 신자유주의 횃불을 붙이다
1970년대 말 ‘철(鐵)의 여인’ 마가렛 대처 총리(M. H. Thatcher·보수당)와 함께 영국에서 ‘신자유주의’의 바람이 불기 시작했다. 대처 총리는 1979년 취임하면서 당시 만성적인 영국병에 시달리던 자국의 구원자로 급부상했다. 영국병은 소위 고복지·고비용·저효율을 일컫는 용어다.
그 시절 영국은 과도한 사회복지와 노조의 막강한 영향력으로 인한 지속적인 임금상승, 그리고 생산성 저하에 따른 전반적인 경제 침체 등의 여파로 영국병에 시달렸다. 이는 갈수록 심해지면서 결국 1976년에는 IMF(국제통화기금)의 금융지원까지 받는 상황에 처하게 됐다.
대처 총리는 “영국의 노동당 정부가 20년간 지속해 왔던 사회복지국가 정책이 만성적인 저성장 등의 부작용을 낳았다”면서 “그동안의 실패를 통해 사회주의를 포기하고 새로운 시작을 준비하겠다”며 영국을 변화시키겠노라 선언했다.
대처는 저비용·고효율로의 경제구조 전환을 통해 시장경제 원리를 중시하는 경제개혁에 착수했다. 대폭적인 정부재정지출 삭감을 시작으로 공기업 민영화, 규제 완화와 경쟁 촉진 등 공공부문의 개혁이 이뤄졌고, 이 같은 과감하고 획기적인 정책 추진은 대처 총리를 철의 여인이라 불리게 만들었다.
이후 대처 총리는 3선 연임에 성공하면서 1990년까지 집권하는 동안 5개 노동법을 개정해 노동시장 또한 개혁했다. 또 1979~1989년에 국영기업 50여개를 민영화하는 등 신자유주의적 정책을 펼쳐나갔다. ‘대처리즘’이라고 명명되는 대처의 신자유주의적 정책은 세계의 흐름을 뒤바꾸며 세계화의 초석을 다지는 계기가 됐다.
대처 총리보다 1년 뒤인 1980년 취임한 미국의 로널드 레이건 대통령(Ronald Wilson Reagan·공화당)의 등장도 미국 전역에 세계화와 신자유주의 물결을 확산시켰다. 레이건 대통령은 고도성장을 위해 정부 지출의 축소와 행정적 규제의 철폐를 단행, 대처리즘과 일맥상통하는 레이거노믹스(레이건과 이코노믹스를 결합)를 만들어냈다. 이렇게 세계화와 신자유주의는 세계 경제질서를 주도했다.
한편 영미국가보다 자유주의의 바람이 약했던 아시아에는 고립주의 끈을 놓지 않던 중국이 있었다. 중국은 1949년 이후 대(對)비공산권국가에 대해 공산당의 허가 없이 국외 입국과 출국을 금지시키는 소위 ‘죽(竹)의 장막’이라 불린 강력한 배타적 정책을 취해왔다. 그러나 1976년 집권한 덩샤오핑은 자본주의 시장 경제를 도입하면서 그간의 고립주의를 깨뜨린다.
서양의 자유주의와는 다소 차이가 있지만 선진국의 자본과 기술을 들여 올 필요성을 느낀 덩샤오핑은 경제 성장을 통해 사회주의를 완성시킬 수 있다는 시장 사회주의를 내세웠고, 외국 기업을 적극적으로 유치하는 등 본격적인 자유주의 성향의 정책을 펼치면서 세계경제를 주도할 기반을 닦아 나가기 시작했다.
하지만 2008년 미국발 금융위기인 ‘리먼브라더스 사태’가 터지고 세계 각국은 금융위기에 휘말리면서 대처리즘과 레이거노믹스로 승승장구를 달리던 신자유주의는 위기를 맞게 된다. 유럽 전역에서 일자리가 감소하고 청년 실업률이 치솟았으며 장기 불황으로 양극화는 극심해졌다. 불황의 직격탄을 맞은 서민은 분노했다.
설상가상으로 2011년 ‘아랍의 봄’을 계기로 중동 정세가 불안해지며 북아프리카와 중동에서 급증한 난민은 하나둘 유럽으로 옮겨왔다. 지난해 파리 테러 등 이슬람교도 이민자의 테러까지 잇달아 터지면서 유럽 각국에서는 이민자를 경계하는 움직임이 두드러지기 시작했다.
결국 불평등과 양극화는 타협점을 찾지 못했고 결국 그간 명성을 누리던 세계화와 신자유주의에 대한 자성의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세계는 신자유주의와 세계화에 반(反)하는, 신고립주의로 향할 출발선에 서게 된다.
■ 영국발 ‘신고립주의’ 대서양 넘어 미국까지
세계 곳곳에서 신자유주의에 대한 의구심이 피어날 때 신자유주의를 이끌던 영국에서도 결국 ‘돈’ 이 문제의 발단이 됐다.
전 세계적인 경제 위기로 EU의 재정도 악화되면서 영국이 내야 할 EU 분담금 부담이 커져가자 보수당을 중심으로 EU 잔류 반대 움직임, 즉 ‘브렉시트’ 여론이 확산됐다.
설상가상으로 취업을 하려 영국으로 몰려 든 이민자가 크게 증가했고, 특히 지난 2015년 말 시리아 등으로부터의 난민 유입이 계속되자 EU 탈퇴를 요구하는 움직임이 가속화됐다. 세계와 함께가 아닌 자발적 고립으로 우리만의 독자적 노선을 걷겠다는 것.
데이비드 캐머런 영국 총리는 2015년 5월 총선에서 ‘승리하면 EU 탈퇴 여부를 묻는 국민투표를 2017년까지 실시하겠다’고 약속했고, 선거 후 승리 연설에서도 이를 다시 확인한 바 있다.
이처럼 영국 내 EU 탈퇴 움직임은 가속화됐고, 영국 정부는 잔류의 조건으로 EU 측에 △이민자 복지혜택 제한 △영국 의회의 자주권 강화 △EU규제에 대한 영국의 선택권 부여 △비유로존 국가의 유로존 시장 접근 보장을 제시하고 나섰다. 결국 EU는 2016년 2월 EU 회원국 정상회의에서 영국의 이 같은 제안을 대부분 수용하겠다며 브렉시트를 막으려 노력했다.
대처리즘과 함께 시대를 풍미했던 레이거노믹스의 본고장 미국에서도 신고립주의가 부상하기 시작했다. ‘미국이 먼저다(America First)’. 2016년 미국 대선 공화당 후보인 도널드 트럼프가 외치는 구호다. 영국의 브렉시트 지지자들이 ‘우리나라를 되찾자’(Take back our country)라고 외쳤던 것과 그 속에 담긴 뜻이 비슷하다.
영국의 움직임과 더불어 트럼프는 그동안의 세계화를 깨고 신고립주의로의 미국을 이끄는 선봉에 서 있다. 그는 미국이 이미 맺은 각종 자유무역협상을 재검토하겠다고 말했으며,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에도 반대 입장을 표명한 바 있다.
또 중국산 제품에는 높은 관세로, 멕시코 노동자는 국경에 거대한 장벽을 쌓아 막겠다는 그의 약속은 경제난에 허덕이는 미국인들에게 호소력을 발휘하고 있다. 여기에는 세계화가 가져온 후유증과 피로감에 젖은 미국인의 정서가 깔려 있다.
또한 트럼프와 경쟁을 벌여야 할 민주당의 힐러리 클린턴 전 국무장관 역시 트럼프보다는 정도가 덜 하지만, TPP에 반대하는 등 기존 정책 수정 의사를 보이고 있어 미국의 신고립주의 역시 짙어가고 있다.
실제 최근 발표된 미국의 ‘대외 정책 관련 설문 조사’에서 미국인 57%가 ‘미국은 자체 문제에 더 신경을 써야 하고, 다른 나라의 문제엔 간섭하지 말아야 한다’는 의견을 보였다. 이는 관련 항목을 조사한 이래 가장 높은 수치로, 2002년(30%)보다 무려 두배 늘어난 수치다.
채희율 경기대학교 경제학과 교수는 “트럼프는 대통령으로 당선된다면 FTA 등 각종 자유무역정책을 재검토하겠다고 밝히는 등 세계는 각자도생의 분위기가 짙어지고 있다”면서 “각국이 자국의 이익을 우선시하면서 세계는 신고립주의가 강화되는 모습”이라고 설명했다.
■ 전 세계를 뒤흔든 ‘브렉시트’
2016년 6월23일(현지시간) 영국의 EU 탈퇴가 결정됐다. 브렉시트가 현실이 됐다. 1973년 영국이 EU의 전신인 유럽경제공동체(EEC)에 가입한 지 43년 만이다.
전 세계는 충격에 휩싸였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세계 질서를 주도해온 자유주의 시대가 저물고, 자국 중심의 폐쇄적 신고립주의 시대가 열리는 신호탄으로 볼 수 있다.
이날 브렉시트 찬반 국민투표에서 투표에 참여한 영국 국민 3천355만명의 51.9%인 1천742만명이 브렉시트 찬성에 표를 던졌고, 반대(48.1%)를 겨우 3.8%포인트 차이로 앞선 결과였다. 영국은 EEC에 가입한 지 2년 만인 1975년에도 EEC 잔류 여부를 묻는 국민투표를 추진한 바 있다. 당시엔 영국 국민의 67%가 잔류를 지지했다.
하지만 이번엔 달랐다. 브렉시트는 현실이 됐고, 이로 인한 충격은 상당하다. 영국은 유럽 연합 중 독일에 이어 2번째로 경제 규모가 큰 나라로 유럽 경제는 큰 타격을 받게됐다.
또 세계 금융 산업의 중심지인 런던 금융 시장이 2008년 금융 위기에 버금가는 후폭풍에 휩싸일 것이며, 차례대로 다른 금융 시장에 영향을 끼치리라는 불길한 우려가 계속되고 있다. 세계 언론은 금융시장 전체가 브렉시트의 충격에서 한동안 벗어나기 어려울 것이라 판단하고 있다.
실제 브렉시트 이튿날인 6월24일 영국 파운드화는 1985년 이후 최저치로 추락했고, 안전자산이라 여겨지는 엔화 가치는 폭등했다. 전 세계 주식시장도 일제히 폭락했다. 국제 금융시장의 혼란은 장기적으로 실물경제에도 영향을 줄 수 있다.
전문가들은 브렉시트가 신자유주의 붕괴의 신호탄이라고 분석하고 있다. 영국 국민들이 EU탈퇴를 결정한게 된 가장 큰 이유는 동유럽과 이슬람에서 밀려드는 이민자들로 인해 일자리와 복지혜택을 잃게 됐다는 불만에 차라리 고립되는 길을 택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수출의 40% 이상을 의존하는 EU를 탈퇴함으로써 얻는 손해가 막심하고, EU가 가할 지도 모를 무역장벽까지 감내하겠다는 각오가 있어야만 할 수 있는 선택이기에 이번 결정은 고립에 대한 강력한 의지없이는 불가능한 것이었다.
1970년대 신자유주의를 세계에서 가장 먼저 도입하고 또 적극 전파했던 영국이, 이제 그것과 반대되는 선택을 가장 먼저 하고 나섰다. 세계화와 신자유주의의 위기를 영국이 가장 먼저 보여주고 있다.
이유를 불문하고 영국은 고립을 택했다. 유럽 대륙에서 떨어져 자국의 필요에 의해서만 개입하겠다는 고립 노선을 찾아 나섰다.
이에 대해 대외경제정책연구원 관계자는 “브렉시트 직후 금융시장 등에 전해진 충격은 상당했으며 현재는 조금씩 완화되고 있다는 분석”이라며 “영국정부는 올해 말이나 내년 초 사이에 EU탈퇴 수순을 밟는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 브렉시트 이후 세계 경제 ‘각자도생?’
브렉시트가 결정되자 프랑스, 이탈리아, 네덜란드 등 유럽 주요국 포퓰리즘 정당들은 “다음엔 우리 차례”라며 EU 탈퇴를 주장하고 나섰다. 벌써부터 ‘프렉시트’, ‘벨시트’, ‘넥시트’, ‘그렉시트’, ‘스웨시트’ 등의 표현이 우후죽순 쏟아지며 영국에 이은 EU 탈퇴국가들이 언급되는 상황이다.
단지 영국이 먼저 EU 탈퇴를 선언했을 뿐, 다른 유럽 국가들의 ‘탈 EU’ 움직임은 시간문제라는 판단이다. 유럽에 브렉시트가 ‘도미노 효과’를 일으켜 EU 내 다른 나라로 이탈 움직임이 확산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는 것이다. 결국 브렉시트는 단순히 영국의 EU 탈퇴가 아니라, EU 해체의 서막이라는 우려까지 나오고 있다.
또 그간 경제난 속에 난민 유입과 테러로 몸살을 앓으면서 유럽 국가들에게 EU가 지향했던 ‘하나의 유럽’은 서서히 힘을 잃고 있다는 분석이다. 해외 언론들은 앞다퉈 “난민 위기와 테러가 잇따르면서 국가 정체성을 우려하는 여론이 높아졌다”며 “타국민보다는 자국민 우선이라는 분위기가 극우 정당의 고립주의 정책에 힘을 실어주고 있다“고 보도하는 추세다.
특히 파리 테러를 직접 경험했던 프랑스에서는 EU 탈퇴 분위기가 고조되는 형국이다. 극우 성향의 국민전선이 EU 탈퇴, 이민자 수용 반대, 무슬림 추방 등을 주장하며 정당 지지도 1위를 달리고 있다. 특히 국민전선의 마린 르펜 대표는 “내가 여러 해 동안 EU체제로 인한 유로화 사용과 솅겐 조약을 비판해왔듯이 프랑스도 EU탈퇴를 위한 국민투표를 시행해야 한다”고 언급하며 프랑스 내 고립주의를 이끌고 있다.
르펜 대표의 지지율은 1, 2위를 다툴 정도로 높아졌고, 결국 그녀는 2017년 4월 대통령 선거 공약으로 EU 탈퇴를 위한 국민 투표를 내걸었다.
또 핀란드에서는 유로 존 탈퇴 여부를 묻는 국민 투표를 실시해 달라는 청원서가 제출, 사회적 논의가 시작됐다. 이는 EU의 경제 제재로 핀란드의 수출 길이 막힌 탓이다. EU는 러시아에 대해 EU연합국의 경제적 교류에 제한을 두고 있는데 러시아의 경우 핀란드의 최대 수출국이다.
이로 인해 세계 최대 휴대폰 기업이었던 노키아의 파산을 시작으로 4년 평균 마이너스 성장을 하고 있는 핀란드는 설상가상으로 핀란드의 최대 수출국인 러시아에 수출 길이 막히자 2008년 대비 30% 이상 수출이 급감한 상태다.
아시아에서는 중국이 인근 동북아·동남아 지역 국가들의 반대를 무릅쓰고 남중국해 영유권을 주장하며 ‘마이웨이’를 가고 있다. 주변 국가들과 끊임없이 영유권 분쟁을 벌이고, 분쟁 중인 도서지역에 군사시설 설치를 강행하는 것 등은 자국 이기주의에 근거한 고립주의로 볼 수 있다.
아베신조 일본 총리가 추진해 온 ‘아베노믹스’도 자국을 고립시키고 이기주의를 추구하는 정책이다. 엔화 가치를 떨어뜨려 자국 기업의 경쟁력을 높이겠다는 전략으로 주변국은 고려하지 않는 독자 정책이다.
이같이 브렉시트를 기점으로 당장 유럽은 물론 세계의 미래가 불투명해졌다. 유럽연합은 자국 우선주의를 외치는 극우파들의 움직임을 막고 역내 경제·사회를 안정시켜야 하는 큰 숙제를 안게 됐다.
채희율 경기대학교 경제학과 교수는 “브렉시트 이후 세계는 매우 큰 충격을 받았으며 EU국가들은 혼란스러워하고 있다”면서 “하지만 영국이 안게되는 각종 문제점에 대해 지켜보면서 쉽게 EU탈퇴의 결정을 내리지는 못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한편 브렉시트에 이어 ‘45대 미(美) 대통령 트럼프’까지 현실화한다면 신고립주의는 거스를 수 없는 시대적 대세로 자리 잡을 가능성이 크다. 40여년 동안 세계 경제를 지배해 온 ‘신자유주의’가 ‘신고립주의’로 탈바꿈하며 세계는 큰 변화의 소용돌이에 직면해 있다.
한진경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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