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지수 꼴찌, 타락한 세상 되돌리려면… 인간성 회복이 답”
라면값이 15원, 이발비가 25원 하던 시절 라면 먹자고 머리를 자르지 않았다.
그렇게 기른 머리가 트레이드 마크가 됐다. 작가 이외수 이야기다. 그 시대는 그랬다. 라면값도 없을 정도로 어려웠다. 배곯기는 일쑤였고, 쓰고 싶은 글도 부르고 싶은 노래도 함부로 부를 수 없는 시절이었다. 하지만 최소한 지금은 이발비 아껴 라면 먹는 시대는 벗어났다. 심지어 대통령까지 악성댓글의 공격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시대는 이렇게 변했고 발전했는데, 우리시대 청년들은 힘들다고 아우성이다. 기성세대들은 여전히 허리띠를 졸라매야 한다고 외쳐댄다. 2008년 이외수는 저서 <하악하악>에서 “세상은 오래전에 타락해 버렸고, 낭만이 죽었다는 소문이 전염병처럼 떠돌고 있다”고 말했다.
지난달 26일 강원도 화천에서 만난 이외수에게 물었다. “여전히 세상은 타락했고, 낭만이 사라졌나요.” 그가 대답했다. “더하면 더했지 덜하지 않을 겁니다.” 그에게 물었다. “타락한 세상을 되돌리기 위해서는 무엇을 해야 하나요.” 그가 말했다. “‘인간성 회복’. 그것이 답”이라고.
-건강은 어떤가.
좋다. 어제는 밤낚시도 다녀왔다. 물론 5년이 넘어야 안심할 수 있다지만, 현재까지 병원 진단 결과는 양호한 편이다. 항암치료도 8차까지 완료했다. 하지만 아직 항암 후유증이 남아있다. 부작용이 거의 없긴 해도, 손발이 저리거나 손톱이 거칠어지고 각질이 일어나는 증상이다. 보통 일 년 지나면 회복된다는데, 좀 더 있어봐야 알 것 같다.
-투병 중에도 SNS를 꾸준히 했다.
암이라고 하는 병이 극복하기 어렵고, 죽음과 직결돼 있다는 것이 일반적 견해다. 그 사실을 인정하고 싶지 않았다. 어쨌든 인간이 극복할 수 없는 것은 없다고 생각했다.
무엇보다 나와 같은 병과 싸우고 있는 많은 환자, 그분들한테 희망과 용기를 드리고 싶었다. 그래서 매일 하루도 빠지지 않고 페이스북과 트위터로 ‘항암일기’를 썼다. 가급적이면 긍정적 사고를 할 수 있도록 권유하는 데 주력했다.
-요즘 이야기를 해보자. 뉴스 보기가 참 괴롭다. 지금의 대한민국, 어떤가.
절망적이다. OECD 중 경제력 12위를 자랑하면서도, 행복지수는 꼴찌다. 여기에 국민자살률 1위, 노인자살률 1위, 청소년 자살률 1위, 자살률 3관왕이다. 이것이 현실이다. 우리는 여전히 ‘물질의 풍요가 인간을 행복하게 해 준다’는 사고방식을 가지고 있다. 지성을 가르쳐야 할 대학에서조차 철학과는 취업이 안 된다는 이유로 없애고 있다.
정부 또한 국민들로 하여금 허리띠를 졸라매라고 계속 강요한다. ‘약육강식’이니 ‘생존경쟁’이니 하는 말들은 또 어떠한가. 과연 약한 자가 강한 자에게 잡아먹혀야 하는 시대가 인간다운 시대인가. 이건 동물의 왕국에서나 통용되는 말이다. 결국 동물하고 크게 다를 바 없는 가치관으로 산다는 것이다.
-특히 청년들이 많이 힘들어 하고 있다.
오죽하면 젊은 친구들이 ‘헬조선’이라고 이야기하겠나. ‘헬조선’이라는 표현을 두고 청년들의 반발심리라고 치부해버리거나, 짜증을 내는 분들이 많은데, 부끄러움을 먼저 알아야 한다. 왜 우리가 젊은 세대들한테 ‘헤븐조선’이 아니라 ‘헬조선’을 물려줬는지 생각해 봐야 한다.
이제 젊은 세대들은 소중한 것 세 가지와 다섯 가지를 포기한다는 ‘삼포’와 ‘오포’를 넘어 ‘구포’까지 갔다. 인생 전체를 포기한 것이나 마찬가지다. 이것을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 고민하고 또 고민해야 한다.
-옛날의 청년들은 어땠나. 이렇게 힘들었나.
사실 우리 세대가 여러 가지 면에서 불행한 세대라고 생각해왔다. 정말 불행한 젊음을 보냈다고 절감했었다. 하지만 지금처럼 나약하진 않았던 것 같다. 지금의 젊은이들은 우리 세대보다 좀 나약한 것이 아닌가라는 생각이 든다. 군대만 비교해볼까. 나는 복무 3년이었다.
지금은 2년이다. 한 내무반에 보통 30~40명씩 공동생활을 했다. 지금은 보통 한 생활관에 싱글침대 10개가 놓여있다. 거기다 대형TV와 드럼세탁기까지 다 있다. 심지어 병사들이 변기에 비데 안 깔아준다고 아우성치는 정도다. 그런데 정신적으로는 우리 때보다 더 고통스러워하고 있다.
자살률도 훨씬 높고, 관심사병도 많다. 그만큼 현대인들이 앓고 있는 정신적인 문제를 심각하다는 얘기다. 인간이라고 하는 존재가 몸만 가지고 있는 것이 아니다. 정신과 영혼을 함께 가지고 있어야 한다. 이 세 가지가 조화롭게 어울려야 하는데, 지금의 젊은이들은 그렇지 못하다. 우리시대야 육체적으로 고달팠어도, 정신과 영적으로는 ‘위안거리’가 더 많았는지도 모른다.
-그 ‘위안거리’라는 것이 무엇인가.
가령 ‘책’이라고 할 수 있겠다. 지금 젊은이들은 책을 즐길 줄 모른다. 즐거움을 가지고 책을 읽는 것이 아니고, 취업을 위해 읽어야 한다. ‘자연’도 마찬가지다. 우리는 즐길 수 있는 자연이었다. 지금의 자연은 필요에 의한 자연이다. 부모님들도 인간이 인간답게 사는 것을 굉장히 중시했던 시대였다. 지금은 어디 그런가. 인간답게 살지 않더라도, 물질의 풍요 속에서 자녀들이 살길 바라지 않는가.
-그렇다면 해결점은 무엇인가.
항상 강연 때마다 외치는 것이 있다. 바로 ‘가치관의 수정’이다. 이제 대한민국은 가치관을 수정해야 할 때가 왔다. 오로지 물질의 풍요가 행복과 직결된다는 사고방식을 버리자. 좋은 대학 나와서 좋은 직장을 가진다는 것이 진정한 성공이 아니다. 좋은 대학 나와서 좋은 직장 차지하고 나라 말아먹는 사람들도 많다.
나의 성공에 의해서 나의 이웃과 연계된 사람들이 다 함께 행복해야 되는데, 결국 나의 성공에 의해 불행해지는 사람들이 많다. 무엇이 ‘행복한 삶’이고 ‘인간다운 삶’인지 고민해야 한다. 대한민국은 무궁화삼천리화려강산 아닌가. 굉장한 잠재력과 가능성을 가진 나라다. 세계 어디에 내놔도 자부심을 느낄 요소들이 많다.
한글도 모든 언어학자들이 세계 최고에 못지 않다고 이야기하고. 문화ㆍ예술적 잠재력은 말로 형언할 수 없을 정도로 놀랍다. 수 천 년 동안 대한민국이 간직해온 중심 철학인 ‘홍익인간’은 세계 어디에 내놔도 자랑할 만하다. 하지만 과연 지금, 대한민국이 인간을 널리 이롭게 하고 있는지, 그리고 그런 나라로 존립하고 있는지 반성하고 점검해야 한다.
-대선에 대한 질문도 빠질 수 없다. 지난 대선에서 러브콜 많이 받았는데, 중립을 지켰던 이유가 있나.
사실 누구나가 대한민국을 사랑한다고 본다. 후보들 모두가 ‘나라가 잘 되길 바라고 국민을 사랑한다’고 주장하고 나섰으니까, 어쨌든 그걸 믿어드리겠다는 뜻이었다. 그리고 서로가 최대 역량을 발휘해서 국민의 사랑을 받길 바랐다.
나는 정당에 대해서는 회의적이기 때문에, 인물 위주로 본다. 그 때 당시 개인적으로 후보들 모두를 잘 알지는 못하는 상태여서 똑같이 대한민국 위해서 노력을 기울여 주십사 말했다. 무엇보다 공통적으로 문화ㆍ예술에 적극적 투자와 관심을 쏟아 주길 약속받았다. 하지만 뜻대로 안 된 것 같다.
-다음 대선 주자에게 필요한 덕목을 꼽자면.
‘국민 좀 속이지 말자’고 말하고 싶다. 그리고 국민에게 사랑받으려는 대통령보다는 ‘국민을 사랑하는 대통령’이 되려고 노력했으면 좋겠다. 국민들도 각성해야 한다. 너무 많은 공약을 내세우는 정치인들은 다시는 발붙이지 못하도록 해야 한다.
대국민 약속인데 대국민 사기가 되면 되겠는가. 국민을 상대로 했던 약속들을 지키지 않는 정치인들은 이제 정치일선에서 물러나야 할 때가 됐다. 대한민국 국민을 그렇게 무시하고 깔보는 정치인이 어떻게 정치를 하겠는가. 국민들이 이것을 자각했으면 좋겠다.
상식도 되찾아야 하고, 양심도 되찾아야 하고, 도덕도 되찾아야 하는 시대에 허울 좋은 미래보다는 양심과 도덕을 갖춘 정치인을 찾아내고 밀어주는 그런 시대가 돼야 한다.
-작품 계획이 있나.
올해 내 나이가 71이다. 앞으로 더 쓸 여력이 있을까하는 생각이 든다. 마지막 작품이 되지 않을까 싶다. 다섯 권 정도로 인생 전체를 정리하는 작품, 스스로도 이것이 대표작이라고 말할 수 있는 작품을 하나 구상 중이다.
동양의 오행에 맞춰 나무와 같은 인간형, 불과 같은 인간형, 물과 같은 인간형, 흙과 같은 인간형, 쇠와 같은 인간형을 등장시켜 서로 상생하고 상극하는 관계를 그리고 싶다. 합리적이고 철학적인 소설이 되지 않을까 생각한다.
이외수 작가는…
△1946년 출생
△1972년 강원일보 신춘문예에 단편소설 <견습어린이들>로 등단
△1975년 중편소설 <훈장> 신인문학상 수상
△저서 창작집 <겨울나기>(1980)를 비롯해 장편소설 <꿈꾸는 식물>(1981), <황금비늘>(1997), <장외인간>(2005), <완전변태>(2014) 등 다수
송시연ㆍ손의연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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