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신의 집에 소가 병이 나서 며칠째 먹지 않는다는 것이다. 설명을 다 들은 수의사는 커다란 알약 하나를 주면서 집에 가서 소에게 먹이라는 것이다.
그런데 수의사가 준 알약이 상당히 커서 거의 탁구공만 했다. 농부는 “이렇게 큰 알약을 어떻게 먹어야 합니까?” 하고 먹이는 방법을 물었다.
그러자 수의사는 “커다란 호스에다가 이 약을 넣고 그리고 한쪽 끝은 소의 입을 벌리고 목구멍 깊숙이 넣은 후 한쪽 끝을 잡고 힘껏 훅 부세요. 그러면 쉽게 약이 소 목구멍 안으로 들어갈 것입니다.” 농부는 알겠다며 약을 받아 들고 집으로 갔다. 그런데 저녁 즈음에 이 농부는 아침에 수의사를 찾았을 때 보다 더 심각한 얼굴로 수의사를 찾아왔다.
“웬일이십니까? 소가 상태가 더 안 좋아 졌나요?” “아닙니다. 그게 아니고요” “그러면 무엇입니까? 약은 먹이셨어요?” “예” “그런데요. 왜 그렇게 걱정스러운 얼굴로 찾아오셨습니까?” “그런데요. 저… 그놈이 먼저 불었어요.”
신앙이란 무엇인가? 신앙인의 삶이란 어떻게 살아야 하는 것인가? 신앙은 믿음이며 믿음은 힘이고 능력이다. 신앙인은 세상을 향해 먼저 바람을 불어 넣어야 할 사람이다. 신앙인의 고유한 능력인 사랑과 능력으로 세상을 변화시켜야 할 사명을 지닌 사람이다.
세상에 대한 무한 책임을 지닌 사람이다. 그러나 세상은 그렇게 만만치 않다. 세상에서 불어오는 바람이 녹록치 않다. 경제적인 논리의 바람, 세상의 인기의 바람, 세상의 권력과 부의 바람으로 끊임없이 우리네 삶을 비틀거리게 만든다.
여기에 맞설 신앙인이 불어야 할 바람은 무엇인가? 올바른 신앙인의 바람이다. 신앙이란 진리를 추구함이다. 믿음이란 정직과 신실이라는 의미를 담고 있다. 정직하고 신실해야 한다. 적어도 신앙인은 세 가지 면에서는 반드시 그리해야 한다.
첫째는 자신과 타인에게 있어서 정직해야 한다. 배우자에 대해서 정직해야 한다. 사랑하는 아내와 남편에게 정직한 자만이 행복한 가정을 세울 수 있기 때문이다. 스승은 제자에게 정직해야 한다. 정직한 사람이 세상을 아름답게 만든다.
둘째는 자신의 소득에 대해서 정직해야 한다. 털어서 먼지가 안 나는 사람이 있겠는가. 하지만 적어도 신앙인은 털어서 먼지가 나지 말아야 한다. 먼지가 나지 않도록 스스로 먼저 털어버리는 연습을 게을리하지 말아야 한다.
셋째는 자신의 책임과 의무에 대해서 정직해야 한다. 정직한 신앙인인 되어야 한다. 자식에게 병역의 의무를 지우지 않으려고 하는 부모가 한심하다. 그러나 이것보다 더 한심하고 불쌍한 것은 그 부모의 자식이다.
그런 부모 밑에서 자라난 자녀에게서 무엇을 기대할 수 있겠는가? 성적을 속이고 얻어진 졸업장과 학위를 가지고 무엇을 하겠는가? 부정한 방법으로 부를 누리려는 사람에게서 아름다운 세상을 기대할 수 있겠는가? 부모의 부정한 방법으로 국방의 의무를 면제받은 자식에게서 어떻게 이 나라의 안녕을 기대할 수 있겠는가?
세상의 바람은 도처에서 불어온다. 광명한 천사의 탈을 쓰고 유혹한다. 종교의 탈을 쓴 세상의 바람은 더 음흉하고 무섭다. 부단한 자기 성찰과 함께 분별하는 지혜가 필요하다. 세상이 나를 향해 불기 전에 내가 세상을 향해 먼저 불어갈 수 있기를 소망한다.
반종원 수원침례교회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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