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시론] 세계를 뒤흔드는 ‘문명 충돌’의 재점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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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9년 베를린 장벽의 붕괴와 독일의 통일, 그리고 소련의 해체는 우리에게 ‘자본주의와 민주주의의 승리’로 환호하게 하였고 북한의 독재체제도 금방 무너질 것이란 기대를 하게 했다.

당시 미국의 저명한 학자였던 프랜시스 후쿠야마는 ‘역사의 종말과 마지막 인간 (The End of HIstory and the Last man)’ 이라는 제법 긴 책을 써서 공산주의의 붕괴와 자유민주주의의 승리는 역사의 종말이고, 자유민주주의는 인류의 이념적 진화에 대한 종점이고 인간 정부의 마지막 형태라고 단언했다.

 

당시 미국의 단극 체제를 바탕으로 정치적으로는 민주주의가 확산되고 경제적으로는 세계화가 본격화됐다. 한국도 러시아와 중국과 잇달아 국교정상화를 이루어내고 남북 대결에서 우리가 완벽한 승리를 쟁취하고 통일의 주도권을 쥐었다고 자신감에 넘쳐 있었다.

 

그러나 오히려 한반도만이 탈냉전 속의 냉전 지대로 불안한 안정을 유지해오고 있다. 그 사이 국제질서는 미국의 일방주의에 911테러가 발생함으로써 냉전체제보다 더 불안한 새로운 형태의 위기가 닥쳐오기 시작했다. 바로 새뮤엘 헌팅턴이 예언한 ‘문명의 충돌’이 시작된 것이다.

 

새뮤엘 헌팅턴은 이 세계의 문명을 7개로 나누고 냉전이 끝난 후 이들이 자신들의 문화적 가치를 강조하게 될 것이며, 정치나 경제가 아니라 문화가 사람과 사람들을 구분하고 문명적 단층선을 중심으로 충돌하게 될 것이라고 예측했다.

 

실제로 중동에서는 이슬람 국가(IS)가 기독교 국가들에 대해 선전포고를 하고 끊임없는 테러를 일으켜 미국과 유럽 지역뿐만 아니라 세계를 공포로 몰아가고 있다. 특히 프랑스에서 자행되는 테러는 프랑스의 이전 식민지 대부분이 이슬람권이었고 이들이 프랑스에 많이 거주하면서 문명적 단층선과 직접 맞닿아 있기 때문이다. 이슬람과 서구 문명의 충돌은 세계 곳곳에서 끝이 보이지 않는 긴 터널 속을 지나고 있다.

 

눈을 돌려 아시아를 보면 유교문화권의 상징인 중국이 그동안 경제적 발전과 국력을 증강시켜 미국과 함께 G2국가로 성장하였다. 중국의 경제력은 바로 군사력의 증강으로 이어졌고 기득권 세력이었던 미국에 대항하는 현상타파의 도전세력으로 부상하였다. 

중국은 남중국해의 수많은 도서들을 자신의 영역으로 주장하고 군사시설을 설치하였고, 국제재판소의 판결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일전불사(一戰不辭)의 태세를 선언하고 있다. 지금 중국의 대중매체와 네티즌들, 그리고 중국인들은 애국주의라는 미명 하에 금방이라도 전쟁을 할 것 같이 흥분상태에 빠져있다.

 

불행하게도 미국과 중국의 새로운 충돌의 단층선상에 한반도가 위치하고 있다. 역대 최고의 관계라고 하던 한국과 중국의 관계는 미국의 사드(THAAD) 배치 소식에 마치 모래성이 파도에 휩쓸리듯 무너져 내리고 있다.

 

우리는 북한의 핵위협에 대응하기 위해 미국의 사드를 허용했다고 강변하지만 중국은 이를 들은 척도 하지 않는다. 중국은 한국의 사드배치를 미국이 중국을 포위하고 위협하기 위한 ‘미사일 방어체제(MD)’의 완성으로 간주하고 한국에 대한 위협과 회유를 반복하고 있다.

 

지금 국제정세와 한반도 정세는 냉전시기보다 더 복잡한 시기를 맞이하고 있다. 이 위기와 어려움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정말 정신을 똑바로 차리고 감정이 아닌 이성으로 대처해야 한다. 그렇지 않고 일시적인 감정에 휘둘린다면 우리는 많은 것을 잃을 수 있다.

 

박기철 평택대학교 교수·한중교육문화연구소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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