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모님 수입 얼마냐?” 아직도 묻는 기업들

이력서에 가족 학력·직업까지 직무 상관없는 개인정보 요구
취준생 자존감마저 무너뜨려

지난 5월 도내 한 은행의 채용형 인턴에 지원한 J씨(27)는 이력서를 쓰면서 찜찜한 기분을 떨쳐버릴 수가 없었다. 

제시된 이력서에는 체중과 혈액형 등 업무와 관련 없는 개인정보 뿐만 아니라 가족의 학력과 연령, 근무처, 직위, 심지어 월수입까지 필수항목으로 작성해야 했기 때문이다. 

J씨는 “개인의 능력이 아니라 부모님의 학력과 현재 직업, 수입이 주요한 평가가 되는 것 같아 기분이 상당히 나빴다”면서 “집안 사정이 어려우면 취업도 되지 않는다는 현실만 실감한 것 같아 속이 상한다”고 토로했다.

 

정부와 기업계, 경제단체가 지난 3월 ‘능력중심채용 실천선언 선포식’을 개최하는 등 개인의 능력을 우선하는 채용 바람이 불고 있지만, 여전히 기업 상당수가 이력서에 업무와 관련없는 개인 정보를 요구하는 것으로 드러났다. 지원자들은 개인정보 유출 우려는 물론 입사지원 과정에서 모멸감까지 느끼면서도 울며 겨자 먹기로 입사지원서를 작성할 수밖에 없다고 입을 모았다.

 

14일 주요 채용사이트를 통해 최근 모집공고를 낸 사업장의 이력서를 확인한 결과 도내 사업장 상당수가 이력서에 지원자의 개인 신상부터 가족의 학력, 직업 등 업무와 관련없는 개인정보를 요구하고 있었다. 

국내 유수의 교육업체인 A업체는 최근 안양서 홈스쿨 교사를 모집하면서 이력서에 혈액형과 신장, 종교를 써넣도록 했고, 용인의 B제조 업체는 가족의 직업을 필수사항으로 작성토록 했다.

가족과 관련된 구체적인 정보를 요구하는 곳도 있었다. 국내 대형보험사인 C보험사 부천지사는 최근 콜센터 상담사를 모집하면서 이력서에 지원자의 본적과 종교 등 개인정보는 물론 가족의 나이와 학력, 직장명, 직위까지 기재하도록 했다.

 

이처럼 개인의 직무와 관련없는 정보를 요구하는 것은 개인의 정보유출 우려가 있을 뿐만 아니라, 개인의 능력 이외의 요소로 차별을 받을 수 있다는 해석이 지배적이다. 

국가인권위원회는 지난 2003년 ‘입사지원서 차별항목 개선안’을 발표하면서 기업에 체중 등 신체사항과 가족 성명ㆍ연령ㆍ직위ㆍ월수입 등 가족관계를 포함해 총 36개 사항을 지원서 항목에서 제외하라고 권고한 바 있다. 

고용노동부 역시 지난 2007년 성별이나 빈부 격차, 외모, 혼인 여부 등에 응시자가 차별받지 않고 직무 능력을 중심으로 선발될 수 있도록 ‘표준 이력서’를 만들어 정부와 공공기관, 1천명 이상의 사업장에 보급했으나 역시 권고에 지나지 않아 상당수 업체가 이를 무시하고 있는 실정이다.

 

인권위 관계자는 “기업이 채용과정에서 학력이나 학벌, 성별, 사회 신분 등을 이력서 항목에 넣는다면 이는 명백한 차별사유에 해당한다”면서 “관행적으로 이어지는 이러한 사례가 하루빨리 개선돼야 한다”고 말했다.

여승구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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