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당에서 큰 소리로 웃고 떠드는 바람에 대화마저도 어려워 조금만 조용해 줬으면 좋겠다고 하면, 그 순간부터 목소리가 더 커져 민망함에 서둘러 자리를 뜬 때도 있다. 운전이야 그 상황만 벗어나면 되고, 식당이야 옮기면 그만인데,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해 속만 끓이는 게 있다. 층간 소음에 시달리는 사람들이다.
층간 소음은 당해보지 않은 사람은 그 고통을 모른다. 오죽하면 “아래층, 위층 주민 잘 만나는 게 부모 잘 만나는 것보다 백배 더 중요하다”는 말까지 나오겠는가. 나도 한때 위층 때문에 심각하게 이사를 고려한 적이 있었다. 하루는 딸 아이가 “시도 때도 없이 들리는 피아노 소리에 머리가 아프다”며 하소연을 했다.
공부하기 싫으니까 별 핑계를 다 댄다고 했는데, 막상 아이 방에 앉아있어 보니 심각했다. 바로 위가 피아노가 있는 방이었던 거다. 피아노 소리가 독주회 수준은 아니어도 제대로 된 곡을 연주하면 그나마 나으련만, 이제 갓 배우기 시작했던지 ‘도미 도미 도솔 도솔…’ 그것도 틀려 다시 치기를 반복하는데 짜증이 났다. 결국, 딸아이는 근처 독서실행을 택했다.
사실 그때 윗집에 부탁도 했었다. 망설인 끝에 찾아가 “우리 집에 고3이 있는데, 피아노 치기는 될 수 있으면 낮에 했으면 좋겠다”고 했더니, 윗집 여자의 표정이 싸늘해지면서 “얼마나 자주 친다고 그러세요?” 하는 거다.
자칫 싸움이 날 수도 있다는 생각에 “그러게요, 근데 우리 애가 예민해서…” 하며 애꿎은 딸아이만 이상한 애 만들고 돌아왔는데 다행히도 한밤중에 들리는 피아노 소리는 줄어들었다. 더 다행인 건 위층이 오래 살지 않고 이사한 거다.
우리나라서 아파트를 포함한 공동주택은 전체 주택의 80%에 이를 정도로 보편화한 주거 형태다. 상하좌우로 벽이나 천장을 맞대고 살아야 하니 소음뿐만이 아니라 다양한 이유로 갈등이 생길 수밖에 없다.
문제는 층간소음은 단순한 갈등에서 그치지 않고 살인이나 방화 같은 강력범죄로 이어져 피해자는 물론 피의자 가족도 심한 상처를 받는다는 데 있다. 지난 2일에도 하남시의 한 아파트에서 아랫집에 사는 30대 남성이 위층 노부부에게 흉기를 휘둘러 할머니를 숨지게 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주말이면 노부부 집으로 손주들이 찾아오는데 그것이 갈등의 원인이 됐다는 거다. 환경부에 따르면 층간소음 상담건수가 2013년부터 매년 2만 건 안팎이 접수되고 있다고 하니 언제 터질지 모르는 폭탄과도 같다.
건설사들이 생활소음이 많은 거실, 주방 등에는 바닥의 소음차단제를 2배 정도 더 두텁게 하고 윗집 화장실 배관 소음이 아랫집에 들리지 않는 새로운 배관공법을 적용하는 등 소음방지에 팔을 걷어붙였지만 그건 새로 짓는 아파트에 한한다.
또한, 사람마다 소음을 받아들이는 정도가 다른데 강력한 법 규제를 통해 층간소음재만 두껍게 시공한다면 결국 공사비 상승에 따른 분양가 상승으로 이어져 서민들의 내 집 장만 꿈만 멀어지게 한다.
이웃끼리 서로 소통하며 배려하면 생활이 편해진다. 어린 자녀를 두었으면 1층을 고르는 것도 방법이다. 다세대주택이나 아파트는 1층 가격이 더 싸다. 놀이터도 얼마나 잘 만들어져 있는가. 아이들이 마음껏 뛰어놀 수 있도록 해주면 일찍 잠들 수 있다. 그래야, 키도 큰다.
위 아래층 입주민의 특성을 파악해 배려하면 얼굴 붉힐 일도 사라진다. 나는 초저녁에 잠드시는 아래층 노부부를 위해 퇴근하면 까치발로 걷고 있다. 걸음걸이가 콩콩거려 시끄럽다는 걸 잘 알기 때문이다.
박정임 경제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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