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시론] 질병 없는 세상 꿈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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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 최초의 국제기구 수장이었던 고(故) 이종욱 세계보건기구(WHO) 사무총장의 묘비에는 ‘질병 없는 아름답고 건강한 세상’이라는 문구가 적혀 있다.

우리나라 질병관리본부의 슬로건도 ‘질병으로부터 자유로운 세상’이다. 질병이 없는 세상, 질병으로 고통받는 사람이 없는 세상은 보건을 하는 사람들이 꿈꾸는 이상향과 같은 것이다. 이 세상에서 완벽하게 실현하는 것이 불가능할지라도.

 

안타깝게도 질병이 없는 세상, 특히 감염질환이 없는 세상은 사실 닿을 수 없는 이상향과 같다. 한 때 감염질환은 곧 사라질 것이라고 예상하는 사람들이 있었다. 

환경이 개선되고 위생상태가 나아지면서 수인성식품매개감염병과 같은 질병이 줄어들었고 1943년 최초의 항생제인 페니실린이 개발되면서 대부분의 병원체는 항생제나 항바이러스제를 통해 해결될 것이라고 기대했다. 그러나 얼마 지나지 않아 그런 기대는 여지없이 무너졌다.

수백여 종의 항생제와 항바이러스제가 개발되었지만 세균과 바이러스가 내성을 획득하는 속도는 신약의 개발 속도보다 월등히 앞섰다. 신종, 재출현 감염병은 끊임없이 등장하여 인류를 위협했다. 2015년 대한민국을 강타했던 메르스만 해도 세상에 알려진지 얼마 되지 않는 신종 감염병이었다.

 

그런데 질병이 퇴치되거나 박멸이 되는 경우도 있다. 바로 예방접종에 의해서이다. 천연두는 전 세계에서 가장 많은 사망자를 유발한 감염질환 중 한 가지로 꼽힌다. 실제로 전 세계에서 최소 1억 명 이상이 천연두로 사망한 것으로 추정된다. 

그러나 1979년 소말리아에서 마지막 천연두 환자가 발생한 이래 WHO는 지구상에서 천연두가 박멸되었다고 공식적으로 선언했다. 2000년에 3만명 이상의 환자가 발생했던 홍역은 현재 퇴치 수준으로 관리되고 있다. 감염질환의 발생이 감소하는데 다양한 요소들이 관여하지만 예방접종이 가장 중요한 역할을 했다는 점에서는 이견이 없다.

 

예방접종으로 질병의 예방이 가능함에도 그렇지 못한 경우도 있다. 실제로 나이지리아의 경우 예방접종이 불임이나 에이즈를 유발시킨다는 괴소문이 퍼지면서 주민의 상당수가 백신 접종을 거부하였고 이로 인해 소아마비 발병이 지속되기도 했다. 

그러나 WHO, 빌앤 맬린다 게이츠 재단(Bill & Melinda Gates Foundation) 등 국제기구와 나이지리아 정부의 노력으로 예방접종률이 향상되면서 소아마비 발생이 급격히 감소하였고 2014년 7월 이후 환자 발생이 없는 상태가 되었다. 그리고 2015년 10월 WHO는 소아마비 풍토병 발생 국가 명단에서 나이지리아를 제외했다.

 

물론 예방접종이 모두 100%의 예방효과를 가진 것은 아니다. 드물지만 예방접종을 통해 이상반응이 발생하는 경우도 있다. 더 안전하고 더 효과적인 예방접종을 개발하기 위한 노력은 여전히 필요하다. 그러나 현재의 예방접종을 통해 얻을 수 있는 이득은 이미 위험을 충분히 상회하고 있다. 그리고 예방접종은 이상향에 불과할 수 있는 ‘질병이 없는 세상’이라는 꿈에 조금이라도 다가갈 수 있게 해 주는 거의 유일한 수단이기도 하다.

 

얼마 전 인유두종바이러스백신(자궁경부암백신)이 우리나라 국가예방접종사업에 도입되어 청소년을 대상으로 무료접종이 시작된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앞으로도 질병을 예방할 수 있는 다양한 백신이 계속 개발되기를, 그리고 이러한 백신에 대한 국민들이 접근성이 지속적으로 높아질 수 있기를 기대한다.

 

최원석 고려대학교 의과대학 감염내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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