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8년 전 초임교사 시절 첫 발령지에서의 정 선배님과의 만남은 새내기 교사가 본받고 싶은 롤 모델로 다가왔고 내 교육철학에 긍정적 영향을 미친 의미 있는 인연이라 생각되기 때문이다.
연세에 비해 훨씬 경륜(?) 있어 뵈는 선배님과 함께 있으면 그저 마음이 편했고, 흠모하는 정이 깊어선지 선배님 이마의 주름살 마저도 진정 이 나라의 교육을 염려하는 교육 선각자로서 고뇌의 흔적이라 믿었다.
때론 친구로, 다정한 형의 모습으로 함께 어울리며 들려주셨던 선배님의 말씀이 지금도 기억에 새롭다.
“인간관계 속에서 성숙해 가는 과정이란 자존감을 세워가는 단계라 보네. 보통의 사람들은 세월 따라 자기 자존감을 세워가며 자신 자존의 울타리를 두텁게 엮어가지만, 자기 발전을 위해서는 이제 그 동안 높이 세웠던 자존감의 울타리를 다듬고 낮추어서 갖혀 있었던 고정된 틀 속에서 벗어나야 참된 교육을 할 수 있는 교사의 여건이 갖추어지지 않겠나.
최선생은 교사의 자존감을 뭐라고 생각하나? 교사가 자신의 지위를 권력이라 생각하는 순간! 그와 함께하는 학생들의 불행이 시작되는 거지.
즉, 교사의 권위는 학생들에게서 나오며 학생들의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높임의 상징이 곧 교사의 리더십이야”며 작은 눈을 감았다 뜨면서 진지하게 말씀하시던 선배님을 보면서 나 역시 자신을 낮춤으로 높임을 받는 섬김의 리더십으로 진정한 교사의 권위를 지녀야겠다고 다짐하곤 했다.
내가 기억하는 정 선배님은 결단하면 마침내 실천하고야 마는 지행일치의 본이 되는 분이셨다. 선배님께서는 우리 교육계의 대부분의 교원들이 기존의 통념, 익숙해진 교육방법론을 추종하며 대세라고 믿으며 따라갈 때, 과감히 새로운 교육패러다임으로 우리나라 현실 교육정책의 문제점을 부각시키는데 앞장 선 분이셨다.
평교사로서 묵묵히 정도라 생각되는 자신의 길을 걷던 정 선배님이 4년 전 내부형 공모로 장곡중 교장으로 발령받아 그 동안 많은 세월 준비하셨던 학교 경영 철학을 소신껏 펼칠 수 있게 되었을 때의 뿌듯함을 나는 지금도 잊지 못한다.
평생 교직생활 동안 좋은 수업을 위해 자신의 수업을 상시 공개하셨던 분. 좋은 교사가 되기 위해 끊임없이 자신을 성찰하면서 노력하셨던 분이셨고, 소외계층 학생들을 배려하고 학습자간 비교되지 않아 마음 편한 배움 중심 수업을 추구해 온 정 선배님께 그야말로 딱 어울리는 적임자였음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모두가 어렵다고 생각할 때 용기 있는 도전으로 마침내 극복하는 순간 진정 자신이 좋아하는 일을 즐길 수 있는 이 땅의 의미 있는 교사가 되는 것임은 선배님의 삶의 궤적을 더듬으며 체득한 소중한 교훈이다.
이제 얼마 후면 스승의 날이 다가온다. 헤어지면 후일 반드시 만남이 있다고 했듯이 정 선배님이 뿌린 씨앗이 발아하여 이제 이 땅에 제2, 제3의 정용택 선생님이 되고자 나를 포함하여 많은 후배들이 노력할 것임을 약속드린다. 제자 사랑이 각별하셨던 분이시라 요즘 스승의 날 스케줄 잡느라 바쁘시다는 정 선배님을 기억하며 석별의 아쉬운 마음을 접는다.
최동호 성복고등학교 교감
로그인 후 이용해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