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과 종교] 예술, 종교 그리고 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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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사동 그림손 갤러리에서 석경전시회가 열렸다. 서예가 의암 김정호 선생이 한문 법화경을 돌 판에 한자 한자 정성을 다해 4년에 걸쳐 새겼다고 한다. 목판이나 석판을 새길 때 원본을 판에 붙여 새기는 것이 일반적인데, 놀랍게도 밑판을 붙이지 않고 바로 판을 새겼다고 한다.

이미 당신의 머릿속에 경전의 내용과 글자의 획수가 다 입력되어 있으니 밑판을 붙일 필요가 없었다는 것이다. 판각기술자가 아니라 서예가인데 붓보다 칼로 쓰는 것이 훨씬 편하다는 재미있는 말도 한다.

 

가로세로 20×30 정도의 석판 509장에 경전을 새기고, 석판의 보존을 위해 낱낱이 바람에 잘 마른 홍송으로 틀을 짜서 옻칠을 입혀 석경을 안치했다. 윗부분을 장엄해 석경을 더욱 빛나게 하는 것이 있었으니, 바로 무형문화재 입사장 이경자 선생의 금속공예 작품이다. 나무틀을 아래위로 나누어 각각 그 윗부분에 가로세로 20×5 정도 크기의 쇳덩이에 금과 은으로 문양을 넣어 장엄을 더했다. 맨 앞장과 뒷장은 금속공예로 법화경의 상징인 하얀 연꽃을 주제로 화려하게 수를 놓아 표지를 삼았다. 이렇게 모두 7만자 511장의 법화석경이 전시되었다.

 

여기에 돈황미술의 대가인 서울대 서용 교수의 불화가 세 점 같이 전시되었고, 경판이 처음 시작되는 곳에 세계적인 종이공예가 김정순 선생의 한지 등을 배치해 마치 사바세계에 오신 부처님을 맞이하듯 전시장을 등불 공양으로 환하게 밝혔다. 당대 최고 예술가 네 명의 작품으로 시현된 불국토다.

 

김정호 선생은 매일 석경을 새기기 전 백팔배로 자신을 내려놓으며 부처님 전에 향을 사루고, 보이차로 관절의 통증을 달래가며 오전 오후 다섯 시간씩 부처님께 공양 올리는 마음으로 한 글자 한 글자 새겼다고 한다. 최고의 각자법으로 최선을 다해 새겨가는 그 환희의 기쁨을 말로 다 설명할 수 없다 했다. 석경을 완성해 갈 즈음, 부처님께서 말씀하신 경전의 심오한 뜻을 깨닫게 되었다고 한다. 앞으로 남은 생은 십조구만오천이십팔자에 달하는 화엄경을 석판에 새기는 것이 목표라 한다. 대략 20년정도 걸릴 듯하다고.

 

석경 윗부분을 장엄한 금속공예판은 머리카락 보다 세 배나 더 가는 선을 하나하나 그어가며 천 번 이상의 칼질로 밑판을 만들고, 그 위에 금과 은으로 무늬를 그려 넣어 석경을 장엄했다. 돌 보다 더 딱딱한 쇠판에 가늘고 연약한 여인의 손으로 한 줄 한 줄 정성을 다해 그었으리라. 이경자 선생은 전시회를 기획하면서 작품을 부탁했기 때문에 시간이 너무 촉박해 무리하게 작업을 하다보니 병이 났다 한다.

 

밤낮없이 어어지는 작업에 고장난 온 몸의 관절을 위해, 매일 침을 맞고 잠깐씩 뜨거운 물에 몸을 담궈 마디마디 쑤시는 온 몸의 관절을 달래가며, 2년짜리 작업을 전수자인 딸과 제자 한 명, 이 셋이 각 석판 위를 장엄할 509개의 작품과 앞 뒤 표지 작품을 8개월 만에 해냈다 한다. 병원에서는 당장 입원하지 않으면 안된다고 했지만 의사에게 어떻게든 전시회 오픈 당일 까지만 견딜 수 있게 해 달라고 사정해 겨우 마무리를 하고, 오픈행사가 끝나기가 무섭게 입원해야만 했다고 한다.

 

약속된 부귀영화가 있는 것도 아닌데, 무엇이 이들에게 이토록 혼신의 힘을 다하게 했을까? 이들에게 종교는 삶과 예술 그 자체인 것이다. 이들에게 예술이란 자신의 삶과 종교를 녹여내는 진지한 작업이리라. 이들에게 작업시간은 이 셋이 하나 되는 합일의 순간이요, 작품은 이러한 인생의 표현이 아니겠는가. 각자 내 삶에 있어서 종교는 어떤 의미일까 진지하게 생각해볼 일이다.

 

절 앞 공원에 철쭉이 한창이다. 전시회 관람하기 좋은 날이다.

 

도문스님 아리담 문화원 지도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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