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하자면 초고속 승진을 한 셈이다. 한데 기쁨도 잠시, 점점 걱정이 몰려오기 시작하는 거라. 그도 그럴 것이 제나라로 말하면, 외국의 사신에게 접대는 기가 막히게 잘하지만, 정작 협상은 질질 끄는 성향이 있었기 때문이다. 자기 자신을 냉정히 평가해 보건대, 보통사람을 움직일 그릇도 못되는 주제에 하물며 제후를 어떻게 움직일 수 있을까, 속이 바짝바짝 타들어간다. 만약 실패하기라도 하면 얼마나 큰 처벌을 받을 것인가.
평소 그의 식습관은 소박한 편이었다. 반찬의 가짓수가 적은 것은 물론, 조리과정이 복잡한 음식보다는 담백한 자연식을 선호하는 편이라, 찬모가 불을 땐답시고 고생할 일도 없었다. 한데 아침에 왕명을 받은 다음부터 온종일 속에서 열이 올라, 저녁이 되자 얼음물을 벌컥벌컥 들이킬 정도가 되더란다. 이러다가는 꼼짝없이 생병이 날 것만 같다.
나랏일을 한다는 게 그렇다. 실패하면 ‘사람의 화’(처벌 따위)를 입기 마련이요, 성공해도 ‘자연의 화’(질병 따위)가 미친다. 정치인의 숙명이란 이 두 가지 화를 받아들이는 것이다. 둘 중 어느 하나도 피하면 안 된다. 섭공은 과연 자기가 그럴만한 그릇이 되는가 고민한다. 나라의 미래를 좌우할 큰일을 하는 자리는 변방에서 한 고을을 다스리는 자리와 차원이 다를 테다.
장자는 이렇게 번뇌하는 섭공의 보기를 들어 나랏일 하는 사람이 가져야할 마음가짐을 우회적으로 이야기한다. 뽑혔을 때는 좋지만, 이 기쁨의 유효기간은 하루도 채 되지 않는다. 막중한 책임감에 속이 타 이내 얼음물을 들이킬 지경에 이른다.
한말 이 땅의 지식인들 사이에 큰 인기를 끈 사상가로 양계초(梁啓超, 량치차오)가 있다. ‘중국(청나라)의 볼테르’라 불리는 그는 강유위(康有爲, 캉유웨이)와 더불어 쓰러져가는 청나라를 일으켜 세우고자 변법자강(變法自强)운동을 펼쳤다. 그가 저술한 <음빙실문집(飮氷室文集)>은 당시 동아시아 전역의 베스트셀러로, 백암 박은식ㆍ석주 이상룡ㆍ도산 안창호 등 명망 높은 독립운동가들 사이에 필독서였다.
양계초는 사실 실패한 정치가다. 광서제의 신임 아래 개혁운동을 펼쳤으나 서태후의 방해로 좌절되어, 강유위는 홍콩으로, 양계초 자신은 일본으로 망명해야 했다. 그러다가 만년에 다시 중국으로 돌아가 천진에 기거하면서 집필한 책이 <음빙실문집>이다.
책 제목의 ‘음빙실’은 그의 서재 이름으로, ‘얼음물을 마시는 방’이라는 뜻이다. 자신의 정치활동이 섭공의 마음가짐이었듯이, 글 쓰는 행위도 같은 마음으로 하겠다는 결의가 배어 있다.
실패조차 아름다우려면 그런 마음이어야 하리라. 실패가 금기어가 된 시대를 구원하는 길이 여기에 있지 않을까. 예수 이야기의 하이라이트는 고난의 십자가이지 영광의 면류관이 아니다. 고난의 쓴맛은 외면한 채 영광의 단맛만 좇는 ‘단맛 중독 사회’는 결코 건강하지 않다.
“아침에 명을 받고서 저녁에 얼음물을 들이키는” 정치인을 보고 싶다. 성공하기 위해 온갖 편법과 술수가 난무하는 우리 사회에서 아름다운 실패 이야기를 더 많이 듣고 싶다. 실패의 대가를 알면서도 역사의 십자가 위에 당당히 오른 그이들이 그리운 계절이다.
구미정 숭실대 초빙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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