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민의 혈세가 들어가는 공공기관이기에 단 한 푼이라도 허투루 사용하면 안 된다. 보다 효율적으로 소중하게 사용해야 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또 공공기관 조직에 문제가 있다면 과감하게 메스를 꺼내어 뼈를 깎는 고통을 감수하며 조직기능과 성격에 맞게 재편할 필요성이 있다.
그러나 경영합리화 논리를 각각 개성과 역할이 다른 모든 기관에 일괄적으로 적용한다면 되레 해당 분야 발전 저해는 물론 도민들에 대한 서비스 질도 떨어져 결과적으로 안 하니만 못한 구조조정이 되고 만다.
몇개 기관을 몇개로 줄여 예산을 얼마 절감했다는 수치상 성과에 몰입돼 더 큰 가치를 상실하는 걷잡을 수 없는 과오를 범하게 될 수도 있다.
경기도가 최근 발표한 산하기관 통폐합 용역안은 산하 24개 공공기관을 12개로 통폐합하는 것이 골자다. 이미 용역은 나왔고 폐지 대상 기관도 지목됐다.
통폐합 대상기관에는 유독 문화, 체육, 여성 관련 기관들이 포함됐다. 경제 논리로만 따진다면 예견된 결과다. 공공 박물관, 미술관, 공연장에서 수익을 내면 얼마나 내겠는가. 이런 기관을 흠 잡는다면 ‘예산 잡아먹는 하마’라고 호도하기 딱! 십상이다.
문화예술 분야를 경제적 논리로만 평가해서는 안 된다. 경기도예술단, 박물관, 미술관이 돈을 못 벌어서, 예산만 축낸다고 해당기관을 폐지하거나 민간에 떠넘기는 것이 오른 선택일까. 공공기관의 존립 가치는 무엇인가. 민간에서 할 수 없는 역할을 수행하는 것이다.
특히 문화예술 분야는 무형의 가치 평가가 중요하다. 경기도의 특성에 맞는 문화예술 사업을 수행하는 것을 산술적, 경제적 가치로만 평가해서는 안된다.
수익을 못 내거나 성격이 비슷하다는 이유로 통폐합만 강조한다면 문화예술계 인사들이나 해당 공공기관들은 서운할 수밖에 없다.
최근 각 분야별 기관 관계자들의 전화가 잦아졌다. 가뜩이나 도정 우선순위에서 밀리고 소외돼 온 문화예술 기관들이 이제는 아예 폐지하거나 구조조정이 대상이 됐다는 처지에 대한 하소연과 분노다.
조직을 없앤다는데 가만히 있을 기관은 없다. 반발이 나오는 것은 어쩌면 생존본능이다. 하지만 이들의 목소리를 들으면 단순한 반발 차원으로 외면하기엔 일리 있는 점이 많다.
이들은 공공기관 통폐합 용역 자체가 제대로 이뤄졌는지 의심하고 있다. 민감하게 폐지를 거론한 기관에 대한 용역보고서는 조직 기본 현황과 실적조차 축소되거나 오기됐다.
지난 15일 열린 도 공공기관 경영합리화 공청회는 어떤가. 통폐합이 가장 많이 거론된 문화예술계나 여성계 전문가는 패널에서 배제됐다. 청중석 현장에 있던 문화예술계 관계자들의 비난 목소리가 커 질 수 밖에 없다. 마치 모든 것을 다 짜놓고 형식적인 의견 수렴만 하는 모습에 해당 기관은 분개할 수 밖에 없다.
경기도 공공기관들은 그동안 경기도 행정이 아우르지 못하는 분야를 전문적으로 전담하기 위해 그 시대와 정권의 상황에 맞게 공공기관을 설립됐다. 시대에 뒤떨어지거나 역할과 성과가 미흡한 기관에 대한 구조조정은 필요하다.
그러나 구조조정의 전제 조건은 기관에 대한 정확한 진단과 의견 수렴이다. 이것 없이 이미 정해진 방향과 계획대로 마녀사냥식 구조조정을 한다면 결국 그 피해는 도민들에게 돌아간다는 점을 명심해야 한다.
이선호 문화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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