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학 칼럼] 암 선고

폐암 치료기술발전 생존율 향상
가장 중요한 건 조기 진단·발견

선고(宣告). 잘못을 저지른 범죄자를 앞에 두고 판사가 죄의 대가를 결정하여 알리는 것을 ‘선고’라 한다. TV 드라마에서 흔히 보듯이 선고가 내려질 때 범죄자는 고개를 숙이고 자신의 잘못과 처지를 생각하면서 흐느끼고, 그 가족들은 죄는 나쁘지만 그럴 수밖에 없었던 환경에서 지켜주지 못한 안타까움에 목이 멘다.

 

슬프고도 어찌 보면 잔인한 선고는 냉엄한 법정 밖에서도 들을 수가 있는데, 바로 암을 진료하는 진료실에서다. 우리는 의사에게 암 진단을 들을 때 흔히 ‘암 선고’를 받는다고 표현한다. 하지만 폐암을 치료하는 의사인 나는 이 선고라는 표현이 그리 달갑지 않다.

환자가 어떤 나쁜 죄를 저지르지도 않았을 뿐만 아니라, 의사인 나 자신이 그런 환자의 운명을 좌지우지할 위치에 있지도 않기 때문이다. 게다가 이 선고는 암에 대한 막연한 두려움이나 치료가 불가능할 것 같은 부정적인 암시를 더욱 키워 환자들이 아예 치료를 거부하게 만들기도 한다.

 

우리나라에서 폐암은 남자에서 위암에 이어 두 번째로 발생률이 높고, 암으로 인한 사망률에서는 1위를 차지하는 위험한 암임에는 틀림없는 사실이지만, 폐암의 진단 자체가 사망선고를 의미하진 않는다. 

최근 의학 기술의 발전으로 탈모나 구토 등의 부작용이 적은 항암제와 표적치료제들이 잇따라 개발되고 있고, 주변부의 손상이 적도록 암 덩어리만 집중적으로 조사하는 방사선 치료기법의 개발, 통증이나 영양부족 등을 도와주는 체계적인 병원 시스템은 폐암 환자의 고통을 크게 경감시키고 생존율을 증가시키고 있다.

 

이러한 치료 기술의 발전과 그로 인한 치료성적의 향상보다 더 중요한 것은 폐암의 예방과 조기 진단일 것이다. 세계폐암학회의 권고문에 따르면 폐암환자의 상당수가 흡연자이고, 처음부터 담배를 배우지 않거나 담배를 끊는 것이 폐암으로 인한 사망률을 획기적으로 줄일 수 있다고 한다.

 

또 흔히 컴퓨터 단층촬영(CT)을 이용한 검진으로 조기에 폐암을 발견하는 것이 사망률을 줄이는 방법이라고 설명한다. 

특히 최근 건강검진에 많이 시행하고 있는 저선량 CT는 검사를 할 때 몸에 해로운 방사선 피폭량을 최소화하면서도 조기 폐암뿐 아니라 흔히 폐의 간유리음영이라 불리는 폐암전병변까지도 찾아낼 수 있다. 이 폐암전병변은 폐암으로 발전할 가능성이 있기 때문에 조직검사를 위한 진단 목적과 동시에 치료 목적으로 폐부분 절제를 주로 시행한다. 

이렇게 빨리 발견되는 폐암전병변이나 조기 폐암의 경우에는 내시경 또는 로봇을 이용한 수술이 가능하기 때문에 수술로 인한 통증 등의 부담이 적고 회복이 빠르며 치료효과도 우수하다.

 

앞으로 진료실에서 폐암 환자를 진료할 때, 침울한 선고가 아닌 쉽게 완치가 가능하다는 희망을 말할 수 있는 날이 하루빨리 오기를 기대해 본다.

 

아주대병원 흉부외과 함석진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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