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직 총리까지 지낸 연세 지긋한 의원이 수수한 차림으로 아침 일찍 버스를 타고 출근한다. 버스기사와 서로 인사도 건넨다. 등에 메고 있는 가방을 열어보니 서류와 노트북이 들어있다. 마치 이웃집 할아버지 같다. 대부분의 의원들도 대중교통을 이용하고 있다. 어느 젊은 여성 의원은 몇 년 사이에 몇 백 건이 넘는 법안을 발의했다고 한다.
문제를 개선하기 위해 계속해서 발의하면 국회에서 관심을 갖게 되고, 결국은 국민들에게 이로운 법이 실현되기 때문이라고 그녀는 말했다. 의원들이 선거에서 내세운 공약들도 대부분은 실현되었다고 한다. 우리 정치 현실과는 사뭇 다르다.
의원들이 사용하는 경비에 대한 관리도 철저했다. 자세한 사용내역과 영수증 제출은 물론이고 이 영수증은 영구보존한다고 한다. 그리고 누구에게나 이 자료들을 공개한다는 점이다.
총리 후보로 거론되던 장관이 세비를 식료품 구입과 쇼핑 등 개인 용도로 사용했다는 제보로 청문회까지 열렸고, 세비 사용내역에 대한 추궁을 당했다. 결국 그는 총리가 물 건너 간 것은 물론이고 장관자리까지 물러나야 했다. 다른 나라의 비리에 비하면 그야말로 푼돈에 지나지 않는데도 말이다.
한국에 출장을 다녀온 한 의원에게 소감을 물었더니 한참 만에 짤막하게 대답했다. “아마 우리가 한국 의원들처럼 고급 리무진을 타고 다닌다면 국민들에게 비난을 받을 것입니다.”라고.
스웨덴에서 국회의원을 비롯한 위정자들은 국민을 위해 봉사하는 직업이라는 인식이 철저했다. 국민들이 내는 세금이 한 푼이라도 개인적 용도로 사용되어서는 안된다는 것이 법에 명시되어 있을 정도다. 그래서 몇 푼 안되는 돈 때문에 정치생명이 끝나기도 하는 것이다.
더욱 놀라운 것은 이런 제도를 누가 만들었느냐고 취재진이 묻자 스웨덴 정치가들 스스로가 만들었다는 것이다. 의식수준이 정말 선진국이구나 하는 생각이 절로 들었다. 우리도 한결같이 선진국을 목이 쉬도록 외치지만, 글쎄다.
이쯤되니 스웨덴의 교육이 궁금하지 않을 수 없다. 정치가들의 생각과 국민들의 의식 그 중심에는 교육이 자리하기 때문이다. 양심과 수치심에 대한 교육을 철저히 이루어지고 있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부처님께서는 양심과 수치심이 세상을 떠받치는 두 축이라 하셨다. 양심은 제 부끄러움이요, 수치심은 남부끄러움이다. 스스로 비추어 부끄러워 할 줄 아는 것과 남 앞에서 부끄러움을 아는 것이다. 부끄러움을 모르면 금수와도 다를 바 없다.
언젠가 의정활동에 써야 할 세비를 생활비로 사용했다는 지적을 받은 어느 도지사가 인터뷰에서 “내 주머니에 들어오면 내 돈인데, 그걸 집에 갖다 준 게 뭐가 잘못된 것이냐” 라고 아주 당당하게 말했다. 그의 표정에서 일말의 양심이나 수치심도 볼 수 없었다. 의정활동을 위해 지급된 세비가 어찌 내주머니 돈이란 말인가! 기가 막힐 노릇이다. 이런 사람을 지도자로 뽑은 사람들의 속내가 궁금하다.
보지 못한 허물을 버릴 수 없고 알지 못한 이익은 얻을 수 없다. 양심의 거울에 비추어 보지 않는다면 어찌 허물을 볼 수 있을까.
창을 통해 들어오는 햇살이 제법 따뜻하다. 창가에 놓인 화분들이 볕쪼기가 한창이다. 다음 주가 설날인데 벌써 봄이 오려는 걸까? 우리의 정치현실은 언제쯤 그리운 봄이 오려나. 살아가면서 부끄러움을 잃지 않도록 나부터 좀 더 노력해야 겠다.
도문 스님 아리담 문화원 지도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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